TODAY : 포덕166년 2025.12.06 (토)
동학이라는 가르침이 맹위를 떨치며 퍼져간다는 소문이 조선의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선전관(宣傳官)을 임명하고 무예별감 두 사람과 군관 한 사람, 그리고 하인 한사람을 딸려 동학의 진원지인 경주로 급파했다. 『고종실록(高宗實錄)』에 의하면, 선전관에 정운구(鄭雲龜)를 선임하고, 수행원에는 무예별감(武藝別監) 양유풍(梁有豊)과 장한익(張漢翼), 좌변포도군관(左邊捕盜軍官) 이은식(李殷植)등이 임명되었다. 이 밖에 정운구의 종자인 고영준(高英晙)까지 합하여, 일행은 모두 다섯 명이 된다. 宣傳官鄭雲龜書啓...
손봉조 집터_최초 동학 접주제를 실행한 곳 남원 은적암에서 돌아온 이후 대신사는 각 처로 다니며 가르침을 폈다. 이러한 결과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도 나날이 늘어나고, 또 그 지역도 넓어져 다만 경상도 일원만이 아니라 충청도에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따라서 이러한 인원을 보다 조직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방법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접(接)’을 조직하는 것이다.본래 접이라는 이름은 유생들이 쓰던 용어이다. 그러나 대신사께서 만든 접은 이와는 다르다. 흥해 매...
은적암 터. 은적암 표지판(우측)과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백용성 스님이 출가한 성지를 알 리는 표지목(좌측) 대신사께서 신유년(辛酉年, 1862년) 6월 용담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을 향해 가르침을 펴기시작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대신사로부터 배움을 받기 위해 용담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문을 열고 맞이하니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開門納客其數其然].’ 또 일 년이 지난 후에...
장조카 최세조의 집터 최세조(崔世祖)는 대신사의 장조카이다. 항렬은 조카이지만 대신사보다 나이가 12살이나많다. 아버지 근암공에게 아들이 없어 동생의 아들인 제환(崔濟渙)을 양자로 들였다. 물론 대신사께서 아직 태어나기 전이다. 이 양아들인 제환의 맏아들이 최세조이다. 근암공의 동학 천도교 기록에는 흔히 맹륜(孟倫)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는 이름이 아니라 최세조의 자(字)이다. 지금 경주시에서 복원한 대신사 생가는 불이 나기 전까지 조카네 가족과 대신사가 함께 살았다....
적멸굴 입구(위아래) 대신사께서 는 경남 양산 통도사 의 말사인 내원암의 자연동굴 적멸굴에 서 49일 기도를 시작 한다. 을묘천서 이후, 대신사는 기도를 통하여 도를 구하는 방법을 행한다. 지금까지 세상을 떠돌며 세상에 나와 있는 가르침을 배우므로 도를 얻고자 하던 방식을 버리고, 하늘에 기도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인으로부터 받은 「천서(天書)」에 ‘(하늘에) 기도를 하라는 가르침[祈禱之敎]’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대신사는 1856년 병진년...
여시바윗골 ‘수운 최제우 유허지’의 초당-대신사께서 움막을 짓고 공부했다고 추정되는 곳으로, 개발 할 당시에 기와와 그릇들이 나왔다. 대신사는 성동에서 조금 떨어진 유곡동 여시바윗골에 작은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공부를 했다. 여시바윗골은 그 지형이 마치 소쿠리같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가끔 사람들이 대신사를 찾아와 도담(道談)을 나누고는 했다. 이곳 여시바윗골에서 대신사는 어느 이인(異人)으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해득하지 못한다는 책을 받고, 이 책의 내용...
수운 대신사께서 이인(異人)을 만났다는 초당과 유허비 울산은 대신사의 처가 동네이다. 대신사께서 젊은 시절 가족을 용담에 두고 주유팔로(周遊八路)를 떠나자, 살기가 어려워진 대신사 사모님은 가족을 이끌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사모님의 친정 동네는 울산 여시바윗골에서 좀 떨어진 ‘성동(城洞)’이라는 곳이다. 주유팔로를 하며 이룬 것 하나도 없이 대신사는 1854년 울산 처가 동네인 성동으로 돌아온다. 이곳 성동에서 좀 떨어진 산간 마을인 유곡동(幽谷洞) 여시바윗골 일명 호암리(狐岩里...
경주 용담 포덕문 안에 세워진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상 용담 일대는 국립공원 지역이다. 1975년 정부로부터 국립공원으로 고시를 받고, 그간 허물어지고 없어진 용담정도 새로 건축을 하였고, 용담수도원도 새로 지어 천도교인들이 참배하고 수련을 하는 도장이 되었다. 근년에 이르러 경주시에서 용담 일대를 산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2010년부터 시작해 2017년까지 용담정 일대 주변 터 31만 4천여m²에 총 74억 원을 들여 시행됐다...
천도교 제1의 성지 용담정 ‘용담’은 대신사께서 득도한 구미산(龜尾山) 용추계곡(龍湫溪谷) 일대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 계곡에는 많은 담(潭)과 소(沼)가 있는데, 이들 중 한 곳을 ‘와룡담(臥龍潭)’이라 불렀다. 대신사의 할아버지는 이 일대에 있던 폐사(廢寺)를 사들여 고친 후에 용추계곡에 있는 와룡담의 이름을 그대로 살려 ‘와룡암(臥龍庵)’이라 이름하였다. 훗날 대신사의 아버지 근암공 최옥이 과거에 실패하고 고향에서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와룡암 자리를 사람이 살 수 있...
저는 충북 진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교당에 다녔습니다. 뜻도 모른 채 주문을 외우고,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신앙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살아오며 많은 굽이길을 지났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서울교구에서 활동하며 신앙의 기쁨을 배웠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사인여천’, ‘성·경·신’의 가르침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습니다. 때로는 흔들렸지만, 끝내 이 길을 붙들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늘 갈증이 있었습니다. 스승님들의 발자취를 더 가까이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었습니다...
『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자연...
지난 11월 30일은 제가 전주교구에서 120주년 현도기념 특강을 한 날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대고천하 – 천지부모라는 제목이었습니다. 120년 전에 의암 손병희 선생이 ...
"함께 써온 100년의 역사, 다시 여는 100년의 미래" 포덕 166(2025)년 11월 23일 신인간사 대표 휘암 윤태원
해월신사 지난 10월 칼럼에서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을 맞아 포덕168(2027)년에는 천도교 세계화를 선언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