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포덕166년 2025.12.06 (토)
* 이 글은 포덕 166(2025)년 9월 17일, 전주문인협회 초청(완산도서관) 특강 원고이다. 1. 종교사적 관점으로 본 역사관 우리는 흔히 서양의 역사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의 역사라고 말한다. 서양에 대비되는 동양의 상징적인 역사는 무엇인가? 보통 동양은 불교 문명권이라고 말한다. 물론 유교[유교(儒敎)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 공자가 체계화한 종교적·윤리적·정치적 사상 체계이다. 유교는 인간관계 속에서의 도덕적 실천, 사회 질서의 유지, 정치적 통치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불교, 도교와 함께 동아시아를 대표하...
본 글은 포덕 164년,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열린 '동학·천도교 그리고 3·1운동과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3·1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이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지난 호에 이어) 이상으로 대표적인 지역 일부의 사례를 통해 우이동 봉황각 49일 특별기도에 참가한 인물들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우이동 봉황각 49일 특별기도에 참여한 이들은 각 해당 지역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본 글은 포덕 164년,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열린 '동학·천도교 그리고 3·1운동과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3·1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이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봉황각 49일 특별기도’를 중심으로 본 천도교의 3·1운동 준비과정 1. 머리말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전개되었지만, 그 준비 과정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직접적인 요인은 고종의 승하와 일본에서 전개된 2·8독립운동이었...
본 글은 포덕 164년,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열린 '동학·천도교 그리고 3·1운동과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3·1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이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지난 호에 이어) 3. 독립정신의 근원-동학의 평등, 평화 사상 1918년 11월(음력) 조소앙 등이 작성한 「대한독립선언서」 무오년인 2018년 작성되어 「무오독립선언서」라고도 한다. 아직까지 작성 시기와 발표 시기가 정확하게 고증되지 않았다. 와 최남선이 작성하여 1...
본 글은 포덕 164년,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열린 '동학·천도교 그리고 3·1운동과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3·1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이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지난 호에 이어) 2) 동학농민혁명이 표방한 근대적 평등사상 1864년 최제우가 처형된 후 최시형이 2대 교주가 되었다.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은 최시형에 의해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더욱 진보하였고, 교세는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더욱 급속하게 ...
본 글은 포덕 164년,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열린 '동학·천도교 그리고 3·1운동과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3·1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이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지난 호에 이어) 2) 동학농민혁명이 표방한 근대적 평등사상 1864년 최제우가 처형된 후 최시형이 2대 교주가 되었다.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은 최시형에 의해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더욱 진보하였고, 교세는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더욱 급속하게 확장되었다. 사인여...
동학혁명에 대한 교단의 인식 천도교의 동학혁명에 대한 인식은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였다. 동학혁명 직후에는 ‘반역’ 또는 ‘역적’이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고향을 등지거나 은신생활을 통해 목숨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동학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고, 갑진개화운동과 3.1운동 등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주제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단에서는 동학혁명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동학혁명과 관련된 가장 앞선 기록은 『천도교회월보』 116호에 게재된 「천도교 61년 연보」의 ‘포덕 35년조’가 아닌가 한...
본 글은 포덕 164년,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열린 '동학·천도교 그리고 3·1운동과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3·1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이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1. 문제의 제기 한국 근대의 시작점을 무엇으로, 혹은 어느 시기로 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제다. 근대를 어떤 기준으로 이해하는지에 따라 당시 한국사회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고, 인과적 결과물인 오늘날의 사회적 성격 역시 근본적으로 다르게 해석될 ...
3. 일본군의 동학군 진압과 그에 대한 인식 일본군의 개입과 경복궁 점령으로 재기포한 2차 동학혁명은 관군과 일본군으로 구성된 조일 연합군과 동학군의 직접적인 전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동학군 진압에 참여한 일본군은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후비보병 제19대대의 3개 중대를 중심으로 후비보병 제18대대의 1개 중대, 후비보병 제6연대 제6중대의 1개 중대, 후비보병 제6연대의 제4중대와 제7중대의 일부 병력, 그리고 부산수비대의 1개 중대, 해군 츠쿠바함(筑波艦)과 죠코함(操江艦)이었다. 동학군 진압의 주력부대인 후비보병...
조선후기 성리학의 통치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변혁을 시도한 동학은 35년이 지난 1894년 동학혁명을 전개함으로써 조선사회 변화의 큰 물줄기로서 역할을 하였다. 양반과 상민, 그리고 천민의 철저한 신분을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적서와 남녀의 차별을 해소하고자 한 동학은 조선 정부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1894년 사회변혁을 주도하였지만 그 과정에 조선 정부 뿐만 아니라 일분군으로부터 적지 않은 탄압을 받고 피해를 받은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동학혁명 초기 동학군과 관군의 전투에서는 동학군의 전과가...
『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자연...
지난 11월 30일은 제가 전주교구에서 120주년 현도기념 특강을 한 날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대고천하 – 천지부모라는 제목이었습니다. 120년 전에 의암 손병희 선생이 ...
"함께 써온 100년의 역사, 다시 여는 100년의 미래" 포덕 166(2025)년 11월 23일 신인간사 대표 휘암 윤태원
해월신사 지난 10월 칼럼에서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을 맞아 포덕168(2027)년에는 천도교 세계화를 선언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