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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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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25일

  • 노은정
  • 등록 2025.09.25 05:41
  • 조회수 13,707
  • 댓글수 0
[은정]Vasco_Núñez_de_Balboa_(1622).jpg
1513년 파나마 지협을 넘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태평양을 발견한 에스파냐 탐험가 발보아

 

○ 1513년, 에스파냐 탐험가 발보아, 태평양 발견

에스파냐 탐험가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Vasco Núñez de Balboa, 1475~1519)가 파나마 지협을 넘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태평양을 발견하였다. 발보아는 1510년 파나마에 상륙하여 무능한 총독을 쫓아낸 뒤 총독이 되었다. 초기에는 다른 정복자들과 마찬가지로 원주민을 학살하고 고문했으나, 한 원주민 추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부터 학살을 멈추고 원주민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1513년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태평양에 도착했고, ‘남쪽 바다(Mar del Sur)’라고 이름 지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인도라고 생각한 것처럼 발보아 역시 태평양을 작은 만으로만 생각했다. 태평양 발견으로 본국인 에스파냐에서 발보아의 인기가 급상승하자 신임 총독은 그의 인기를 우려해 발보아에게 협력한 원주민들을 모두 죽이고 발보아에게도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

 

[은정]창덕궁 규장각.jpg
조선 정조가 학문과 정치를 아우르는 국정 자문 기관으로서 창덕궁 후원에 설치한 규장각. 조선 후기 학문과 문화 진흥의 중심지였다. © 노은정

 

○ 1776년, 정조,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하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1752~1800)는 즉위 후인 음력 9월 25일, 창덕궁 금원 북쪽에 규장각을 세우고 제학, 직제학, 직각, 대표, 검서관 등의 관리를 두었다. 규장각은 왕실의 학문 연구 기관이며 도서관이자 국정 운영의 자문 기관으로서 정조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 후기의 학문 발전과 문화 진흥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정조의 개혁 의지와 학문 존중 정신이 집약된 상징적 제도라 할 수 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로 재편되었다가, 1910년 경술국치로 폐지되었다. 해방 이후 일부 남아 있는 도서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이관되었다.

 

[은정]LuXun1930.jpg
중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 루쉰. 「아Q정전」과 「광인일기」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은 중국 신문화운동을 이끌었다. 

 

○ 1881년, 중국의 사상가 루쉰이 태어나다

중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 루쉰(魯迅, 1881~1936)이 이날 절강성 소흥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이며, ‘루쉰’은 데뷔작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할 때 처음으로 사용한 필명이다. 『광인일기』는 신문화운동을 주도한 세력의 시선에서 본 봉건사회에 대한 최초의 도전서였으며, 사상혁명과 문학혁명의 이정표 역할을 했던 중요한 작품이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아Q정전(阿Q正傳)』은 신해혁명 시기 중국 농촌의 생활상을 심각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봉건적 사회의 모순과 민중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루쉰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떨치게 했다. 루쉰의 사상과 문학은 이후 중국 현대문학의 초석이 되었고 루쉰이라는 이름은 중국 신문화운동의 기수로 자리매김했다.

 

○ 1950년, 시인 정지용이 사망하다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 서정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이 세상을 떠났다. 충북 옥천 출신으로, 휘문고보와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휘문고보 교사를 거쳐 광복 후에는 이화여전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었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수」, 「유리창」 등의 작품으로 섬세한 언어와 서정적 감수성을 통해 한국어 시의 미학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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