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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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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3일

  • 노은정
  • 등록 2025.09.13 11:49
  • 조회수 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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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 독립운동가 이재명 사형 집행. 스물세 살의 청년 이재명은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 문밖에서 군밤 장수로 변장하고 벨기에 황제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다. 안타깝게도 이완용은 복부와 어깨에 중상을 입고 수술 후 살아남았으나 이재명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이날 서대문형무소(당시 경성감옥)에서 순국했다. 이완용은 1926년 68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사인은 폐를 다친 후유증으로 알려졌다. 1909년 이재명이 찌른 칼이 이완용의 폐를 관통한 바 있다.

 

Lee_Wan-yong_Portrait.jpg
이완용 초상화. 68세의 나이로 죽은 이완용의 사인은 이재명 의사의 칼에 찔린 폐의 심각한 상처로 인한 후유증이었다.

 

○ 1971년, 중국공산당 부주석이자 국방부장 린뱌오(林彪), 몽골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 린뱌오(林彪)는 항일투쟁과 국공(國共) 내전 때 혁혁한 공을 세우고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로 떠오르며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이 되고자 했다. 린뱌오의 야심을 꿰뚫은 마오쩌둥은 린뱌오를 옥죄기 시작했고 위험을 느낀 린뱌오는 소련으로 탈출하려 했지만 비행기 사고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후 린뱌오는 마오쩌둥의 암살을 모의한 매국노로 단죄됐고 당적에서도 제명됐다.

 

[크기변환]1967-10_1967年毛泽东与林彪.jpg
1967년 당시 마오쩌둥(사진 오른쪽)과 함께 나란히 걷는 린뱌오.

 

○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개막.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를 목표로, 한국에서 열린 첫 번째 국제영화제이다. 동적인 영화 관람 형태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영상문화를 만들고 세계 영화계에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시작하였다. 제1회 행사의 상영작품은 31개국 169편, 동원 관객은 184,07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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