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포덕166년 2025.12.06 (토)
가끔 일어나는 택배 배달 사고. 누구나 한두 번은 겪었을 것이다. 이번에 내가 겪은 택배 사고에서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문제가 발생했고, 내 잘못은 없는 경우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여러 사람의 다양한 견해도 재미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읽는 이의 이해가 쉽도록 조금 손질하여 쓴다.
정성껏 키워 보냈는데 다 썩어버렸다
내가 농사지은 자연재배 농작물(‘농산물’이 아니고 ‘농작물’이다. 농산물은 파는 것을 전제로 짓는 농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값을 정해서 꾸러미 농작물을 파는 것을 더 이상 안 하고 ‘선물경제’ 또는 ‘호혜경제’ 방식으로만 보낸다)을 보냈는데 며칠 뒤 당사자로부터 받은 사진은 모든 야채가 썩은 모습이었다. 자연재배 농작물은 포장 상태에서도 이삼일은 전혀 썩지 않는다. 당사자에게서 들은 자초지종은 이렇다.
우리 쪽 택배 기사는 수신자 전화번호를 잘못 적었다. 받는 쪽 택배 기사는 적힌 주소가 정확하고 잘 아는 집인데도 택배를 집에 갖다주지 않고 늘 하던 대로 근처 주유소에 갖다 놓았다. 택배가 왔다는 문자 고지가 수신자에게 가니까 늘 하던 대로 수신자가 주유소에 와서 택배를 가져갈 걸로 안 것이다. 그러나 문자 고지를 받을 수 없었던 수신자는 여러 날 지나서 주유소에 들렀다가 택배를 건네받은 것이다. 이러니 자연재배 아니라 뭣인들 이 더운 여름에 농작물이 썩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명상하는 모임에서 좋은 역할을 하는 수신자께 감사 뜻을 담아 내가 보낸 선물이었는데 이렇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수련하는 천도교인으로 모심의 해법이 뭘까를 깊이 고심하게 되었다.
선물을 받게 되어 기뻤던 수신자에게서 의견이 왔다. 명백히 양쪽 택배 기사 잘못이니 책임을 묻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쪽 택배 기사는 물론 택배 본사와 지사에 연락했는데 서로 발뺌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울림이 컸다. 보상을 받으면 돈을 다 내게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그냥 받은 선물이었으니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그다음 말도 돋보였다. ‘우리가 윤석열 탄핵이나 제도 문제 등 큰일에는 잘 나서면서 소소한 개인 일상의 잘못은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사람의 피해를 미리 막는 뜻에서 문제를 제기하자’라는 취지였다.
시천주 해법을 발견하다
이때 나는 이것이 재미있는 놀이감이 되겠다고 여겨져서 온라인 모임 두 곳에 의견을 물었다. 하나는 상당히 진보적인 활동을 하는 모임이었는데 친절한 보상 절차와 썩은 농산물 사진 등의 준비물 목록을 올려주었다. 다른 곳은 명상하는 모임이었는데 자신이 겪은 여러 택배 사고와 처리 사례를 알려주었다. 내 마음의 눈이 번쩍 뜨이는 글들이 많았다.
나는 명상 단체 카톡 방에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올렸다. 동학 이야기는 들어 보았겠지만 천도교는 잘 모르는 분들이다. 최근에 경주에서 열 다섯 명이 모여서 회비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고 발제자도 없이 온전히 한울님 감응하심에 내맡긴 채 너무도 잘 놀았던 모임이다. 나랑 새벽 수련을 5년 여 계속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요 며칠 저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했습니다. 썩은 농작물 배달 사고인데요. 여러 조언을 듣고 용기를 내서 이렇게 처리했습니다.
1) 썩은 농작물을 받은 그분께 야채와 과일을 더 많이 담아서 오늘 다시 보냈습니다. 그분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 드리는 편지도 써넣었습니다. 그분이 제 수고에 미안해하고 감사하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그래서 보상 얘기도 꺼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2) 우리 쪽 택배 기사께도 썩은 농작물 사진과 함께 기사님의 실수를 이해한다며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번에 다시 보내는 택배 상자 위에는 사과주스 하나를 올려놓았습니다. 고의가 아닌 단순한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과중한 업무가 이런 실수를 낳았을 겁니다.
3) 이렇게 하니 안타깝고 억울했던 내 마음이 다스려지고 평화롭습니다. 이 무더위에 그 누구도 긴장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봅니다. 택배 기사의 실수도 줄어들 걸로 확신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내가 이 일을 당해서 나름대로 지혜롭게 처리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쪽 택배 기사가 원래 부부가 일을 했는데 4년여 전에 배달 과정에서 아내가 택배 트럭에 깔려 죽었다는 사실이다. 운전하던 아저씨가 택배를 갖다주려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안 채우고 택배물을 들고 뛰어갔는데 약간 경사진 길이었는지 트럭이 움직였고 조수석 아내는 엉겁결에 내려서 트럭을 막아서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사연을 알게 되었다.
택배 하나 배달하면 300원에서 500원 수수료를 받는다는 것도 알았고 택배 기사는 택배사 직원이 아니고 계약을 맺은 자영업자여서 택배 사고가 나면 배상을 직접 해야 하며 배달 사고가 자주 나면 택배사에서 계약을 해지 당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5,000원 달랑 내고는 ‘내일까지 내가 정한 그곳에 갖다줘’라는 계약상의 ‘갑’의 위치에 선다는 사실이다.
아미쉬 공동체의 큰 용서 사례
7월에만 택배 기사가 과로로 세 분이나 사망했다는 기사도 보게 되었고 그 원인 분석도 읽었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780.html), 로켓배송을 내세우는 ‘쿠팡’이라는 택배회사에서는 택배 분류작업 노동자가 끊임없이 사망한다는 기사는 여러 번 봤다.
사법적 처벌보다는 하워드 제어가 쓴 책 <회복적 정의>에 나오는 개념이 재범률도 낮추고 사회적 정의 실현의 바른길이라고 독서토론에서도 주장했고 내가 참여했던 대안학교 여러 사례에서 봐 왔지만 이를 제대로 실천한 적은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양보하고 참지. 그런데 사회적 파장이 큰 일은 다르다"라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않겠다라든가 개인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이 문제다라는 말에 익숙해 있다. 이번에 나는 이런 공식을 깰 수 있었고 번잡했던 마음의 평화도 얻었고 사회의 정의나 공평도 실현했다고 자부한다.
특히 오래전에 알고 있았던 '아미쉬 공동체 내 총기 난사 사건 처리'를 다시 되짚어보며 큰 배움을 얻었다. 2006년 10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아미쉬의 원룸 학교에서 우유배달원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하여 5명이 사망하는 사건에 대해서다. 범인은 현장에서 자살하였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자 아미쉬 공동체는 (뻔한) 진상규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범인이나 당국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키우지도 않았고 도리어 범인 가족을 위로하고 용서하였던 일이다.
충격에 빠져있는 범인의 아내를 직접 찾아 위로했으며, 범인 가족을 희생자 장례식에 초대하기도 했다. 아미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할 수 있도록 우리도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상 퍼플렉시티 ai 자료 참고)
참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
사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내 안의 억울함과 한탄과 슬픔, 분노를 없애는 신성한 제의라고 하겠다.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합당하고 온전한 것이기도 하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여겨지는 상대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나는 문제도 해결하고 마음의 평화도 얻었다.
농작물 택배를 다시 받았을 뿐 아니라 위와 같은 취지의 내가 써 보낸 짧은 손 편지까지 읽은 그분은 앞으로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번 택배 사고에 직·간접으로 관계된 모든 분이 상한 마음과 불안에서 온전히 회복되고 우리 사회에 ‘회복적 정의’가 실현되길 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윤석열 비상계엄과 탄핵 등에서 ‘회복적 정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모두가 치유 받는 해법은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우리의 과제다. 과도하게 분노와 조롱을 키우며 조회수가 많은 유튜버들은 경계하고자 한다. 상대의 잘못에 호통을 치고 비난을 자주 하다 보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 힘들며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어서다.

글 전희식(진주교구)
*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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