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포덕166년 2025.12.07 (일)
천도교중앙총부 신임 집행부가 출범한 지 한 달, 천도교 종무원의 실무를 이끌어갈 중책을 맡은 강병로 종무원장을 만나, 신앙 여정과 교단 운영에 대한 비전을 들어보았다.
신앙의 뿌리,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도교 집안에서 자라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언제부터 천도교를 믿기 시작하셨는지요? 어린 시절부터의 신앙 경험이나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시면 들려주세요.
제가 계대교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 위치한 영산교구에 형님과 저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시일식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시일식이 끝나면 교당안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었고, 교당 앞마당에서 뛰어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는 어려서 천도교가 뭔지도 모르고 놀러 간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할아버지는 충암(忠庵) 강용이님이시고, 천도교 인명사전에는 종의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할아버지께서는 종종 서울 중앙총부로 출장을 다녀오셨고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부모님과 숙부님, 고모님들은 천도교를 계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오랜 기간 천도교를 하시면서, 가족들에게, 특히 어머니께 천도교 신앙을 이어가라고 당부하셨지만 아쉽게도 할아버지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저도 천도교와 멀어졌고, 친척들은 천도교를 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래전부터 전혀 왕래가 없어서 제가 천도교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중학교 1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 가면서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천도교를 잊고 지냈습니다.
다시 찾은 신앙의 길
어릴 때 교당에 나가셨던 기억, 그리고 교사가 되어 동천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다시 천도교의 신앙을 이어가셨는데요, 그럼 평소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오셨는지요?
먼저 제가 동천고등학교 교사 임용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면접관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다른 답변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지만 천도교에 대해 아느냐는 질문에 어릴 때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그분이 깜짝 놀라면서 반가워하셨습니다. 아마 제가 천도교인의 소개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서 천도교를 알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으셨겠지요. 이후 안관성 종법사님께서 최종 면담하실 때도 제가 어릴 때 천도교를 했다(천도교를 했다기 보다 교구에 놀러 간 것이지만)는 말씀 듣고 굉장히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사 초기에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젊은 나이라 당시에는 지적 호기심이 많았고 교사로서 성장하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또한 학교 일로 바빠서 정작 신앙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20년 전 하계수련회에 참여했을 때입니다. 일반적으로 교직원들은 여름, 겨울 방학 때마다 용담정이나 화악산 수도원에서 수련했는데, 당시는 용담에서 수련했고 수도원장은 법암 김근오 종법사님이었습니다. 종법사님께서 양천주에 대해 설법하셨고, 그 내용은 단순하고 평범한 말씀이었지만 제게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한울을 양한 사람에게 한울이 있고, 양치 않는 사람에게는 한울이 없나니, 보지 않느냐, 종자를 심지 않는 자 누가 곡식을 얻는다고 하더냐."는 말씀이 제 마음을 크게 움직였습니다.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한울사람이라고 할 수 없구나. 천도교를 한다는 것은 한울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훅하고 들어 왔습니다. 이 순간이 천도교를 진심으로 대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또한 학생들을 위한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천도교의 매력을 깊게 느꼈습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위해서 설교 전 약 일주일은 사적인 만남이나 불필요한 대화를 피하고 심고와 경전읽기, 천도교 관련 책읽기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문득 스승님 말씀에 대한 이해가 갑자기 뇌리를 스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설교 준비 과정은 제가 천도교인으로 성장하고 천도교 사상을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훌륭한 동덕이 있어서 이들에게서 많이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환원하신 학암 김학봉 선생님, 덕암 성강현 도훈님, 중암 김대석 동천 교구장님은 소중한 친구이자 직장 동료들이었습니다. 저보다 천도교 공부가 깊으신 분들이라 틈날 때마다 도담을 나누곤 했는데 이분들과의 2, 30년 간의 우정은 저의 천도교 공부가 더 공고해지는 바탕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하시는 점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교인이라면 누구나 스승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때문에 제가 소박하게나마 잘 실천하는 것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가족들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기, 화내지 않기, 절약하기, 작은 액수라도 기부하기, 잠자기 전 “편안히 주무십시오”라며 서로를 향해 절하기 등입니다. 일상에서 누구나 하는 일이라서 언급하기가 민망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생활 속에서 경외지심의 태도를 견지하려고 합니다. 경외지심은 특별한 행동이나 말로 하기보다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기 때문에 저 스스로 천도교 신앙의 잣대로 삼고 있습니다.
천도교는 삶의 방식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특히 마음에 깊이 와닿았던 경전 말씀이나 구절이 있으신가요? 그 말씀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대인접물(待人接物)에 보면 “겸양은 덕을 세우는 근본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씀으로 성인지덕화(聖人之德化)에도 “성인의 덕화는 자기를 버리어 사람에게 덕이 되게 하고...”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결국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의암성사께서도 개벽을 말씀하실 때 스스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모실 시자로 개벽하라는 말씀을 하시잖아요. 이 말씀도 겸양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와닿는 경전 구절은 많지만 제게는 항상 겸양과 겸손의 말씀이 가장 크게 와닿았습니다.
교직 생활 중의 기억
동천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도교 신앙과 교육자의 역할이 어떻게 연결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어려운 질문인데요. 교육자로서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교사로서 부족한 사람이지만, 가르치면서 저 자신도 성장합니다. 십 대 중, 후반의 학생들은 누구나 성장통을 겪습니다. 진로, 이성 교제, 부모님과의 갈등, 친구와의 갈등 등 성인 못지않게 심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결국 상담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함께 대화하며 고민하며 내 일처럼 진심을 다하면 그런 제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선생님이 나에게 이렇게 관심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갈등도 무난히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별한 경우도 있었죠. 제가 교감으로 재직할 때 2015년 개정 교육 과정이 전면적으로 시행되기 전이었는데, 교육 과정을 전면 개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과 상담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학생들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인지, 어떤 학습 환경을 원하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원하는지 등 직접 대화하면서 교육 과정, 토론대회, 봉사활동, 진학 문제까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학교풍토를 바꾸었습니다. 또한 학교를 홍보하고 학생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도전 골든벨> 방송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요. <도전 골든벨>에서 1학년 학생이 골든벨을 울린 것도 큰 화제가 되었지만, 학생회장이 학교를 소개하는 시간을 통해 동천고등학교가 인내천 사상으로 세운 학교라는 것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참으로 흐뭇한 순간이었습니다.
미래를 위한 천도교, 천도교 문화를 더 풍요롭게 가꾸기. 종무원장으로서의 포부와 계획
교직에 계실 때의 기억이 참 행복하셨는지 말씀하시는 내내 밝은 미소로 말씀하고 계시네요. 이번 집행부에 종무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으셨는데, 앞으로 3년간 종무행정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 계획인가요?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사업이나 방향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선, 미래지향적인 천도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남북 평화 통일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천도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교단 차원에서 평화 통일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시의적절하게 선언서를 발표해야 하고, 전쟁과 난민, 기후 재난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때에 맞춰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천도교에서 입장을 발표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교단 내부에서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 있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교인 수가 급감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청년회와 중고등학생들이 천도교단으로 찾아오도록 다양한 포덕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교리 공부를 위한 새로운 체계와 수련을 위한 새로운 방법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상 콘텐츠를 확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학생, 젊은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천도교 유튜브 방송, 홈페이지, 천도교신문, 수도원, 동학혁명기념관 등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전을 주요 언어로 번역하고 외국인 학자들이 연구도 하고 교류를 하는 방법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 우리 천도교 특유의 용어가 많은데, 교단의 번역원이 수립되면, 그런 용어들을 통일하는 작업도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교인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 한마음으로 교인 한 분 한 분이 자기 자리에서 정심수도하며 천도교의 향기를 퍼뜨리고, 천도교인다운 삶을 잘 살아내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랜 세월 학교에서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각의 우주로 키워낸 경험으로 천도교의 종무를 꾸려갈 강병로 종무원장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곧게 곧게 살아온, 그래서 더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들이 걸음걸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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