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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의 민중이 역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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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의 민중이 역사를 만든다

  • 편집부
  • 등록 2025.02.06 16:36
  • 조회수 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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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사태는 수괴의 구속으로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지만, 아직도 그를 추종하고 이용하려는 극우 세력에 의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긴 역사의 안목으로 볼 때 금번 내란사태의 최종적인 결론은 시간문제일 뿐 곧 해결되고 다시금 출발하는 희망의 대한민국 사회가 열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그 해결 과정에서 엄격한 법 적용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반드시 그 책임자들을 경중에 따라 엄벌함으로써 다시는 이 땅에서 문민통치가 훼손되는 일은 없게 하여야 한다. 여하튼 이번 사태를 보면서 드는 감회가 천도교인으로서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12월 3일 한밤중의 거짓말 같은 비상계엄이 발동되자 시민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갔다. 불법적이고 부당한 계엄 선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기구는 오직 국회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회 앞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국회의원의 입장을 막는 군과 경찰을 질타했다. 역사 앞에서 죄인이 되지 말라고. 심지어 어떤 용감한 시민은 돌진하는 군 장갑차 앞을 막아섰다. 마치 1989년의 중국 천안문 사태에서 탱크 앞을 홀로 막아선 이름 없는 대학생처럼. 달려온 일반 시민들 덕분에 2시간 48분 만에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귀대하는 어느 군인은 시민들에게 죄송하다며 인사를 하고 떠나기도 했다.

 

12월 22일은 남태령에서 서울 시내로 향하던 농민들은 경찰 차벽에 막혔다. 농민들만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저곡가 정책에 대한 항의였고 그들이 붙인 이름은 ‘전봉준 투쟁단’이었다. 1894년 갑오년 동학혁명 당시 농민의 절규가 이 시대에도 여전함을 상징하는 호칭 같아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러나 이들 앞을 막아선 경찰은 연신 돌아가라고 경고했고 농민들 앞에는 물대포 등 진압 장비가 쌓여 있었다. 예년처럼 힘없는 농민들은 진압 직전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여의도에 모여 대통령 탄핵을 외치던 응원봉 부대(?)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민주화 운동에 젊은 시절을 바쳤던 부모세대의 고마움을 느낀 평범한 대학생과 시민들이었다. 삽시간에 남태령 고개는 인파로 넘쳤고, 거리 때문에 또는 다음날 출근 때문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핫팩에서부터 따듯한 커피에 어묵 그리고 김밥까지를 선결제해 주었다. 감동적인 모습은 난방버스의 등장이었다. 동짓달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라며 함께 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버스를 통째로 임대해 보내준 것이다, 결국 밤을 새운 농민들에게 다음날 경찰은 차벽을 물리고 시내 진입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0년 만의 서울로 진입한 농민들이었다. 이를 일러 우리는 남태령 대첩이라고 명명했다.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한남동의 시위에도 어김없이 시민들이 등장했다. 체포 찬반 시민들의 시위였지만, 반대파의 시민들은 이미 참여 수에서도 그리고 시위 수준과 진정성, 구호와 청결 등 도덕성에서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연일 강추위에 눈까지 내렸지만, 찬성 시위대는 밤새길 수일 째였다. 눈 내린 새벽에 은박 담요를 뒤집어쓰고 버텨낸 시민의 모습을 보고 언론은 은박지에 싸인 작은 초콜릿 ‘키세스’에 비유해 ‘키세스단’이라고 불러 주었다.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름다운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국가로부터 단 한 푼도 받지 않았고 아니 받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세금 내서 국가를 지켜온 평범한 국민이다. 그들은 빽도, 힘도 없고 남을 괴롭힐 줄도 모르는 선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민중이 바로 이들이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민중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이들이야말로 역사의 주체이자 증인이라고 규정한 이가 바로 수운 최제우 대신사이다. 200년 전에 출세하신 대신사는 오랜 고행 끝에 역사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 자신이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고 주변에 있는 모든 인물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세상에 우리 학문인 동학으로 펼치셨다. 모든 사람은 하늘을 모시고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자각은 도탄에 빠지고 출구 없는 길에 놓여 있던 조선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자기 집의 여종 두 명을 해방시키고 그중 나이가 든 여종은 며느리로, 어린 여종은 수양딸로 삼는 실천에 감동한 수많은 사람이 그를 뵙고자 모여들었다. 이에 죽임을 예감하고 서둘러 깨달은 바를 정리하기 위해 남원으로 피신해 위대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저술한 대신사는 경주로 귀향한 뒤 체포되어 처형당했지만, 그가 남긴 동학은 한국 근대를 열었다. 저 유명한 동학혁명과 3.1혁명 그리고 일제하의 독립운동과 해방 이후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까지 그 연원은 동학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한국 고유의 문화와 사고를 바탕으로 창도된 동학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의 대표적 사상이자 정신이었고 그 중심에는 민중들이 있었다. 

 

대신사의 위대함은 앞선 세대의 지식인이었던 실학자들이 개혁을 주장했지만, 책상물림에 머무른 데 비해 그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들고 그대로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대상은 언제나 억압과 탄압의 대상이었던 민중이었다. 그들 가슴 속에 위대한 자각을 심어주어 스스로 나서서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의 이상적 지상천국 건설의 주역이 될 것을 역설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근현대사가 언제나 민중이 주체이고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연원은 동학이었다. 

 

서구의 사상가 루소(J. J. Rousseau)도 민중의 시대를 예견해 그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일반의지(General will)에 의해 통치되는 이상사회를 구상했었다. 그동안의 역사는 소수의 엘리트가 장악해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됐을지라도 이제 근대의 주역은 이런 평범한 민중들이다. 이들은 역사의 순간순간마다 최전선에 서 있었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었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제발 나라를 제대로 운영해 달라는 부탁뿐이다. 이번의 내란사태처럼 그것이 올바르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다시금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대신사가 자각시킨 민중이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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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년암 임형진(동서울교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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