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동학 · 천도교 인물 아카이브 영상콘텐츠 : 춘천교구 편(2)동학·천도교의 역사와 교인들의 삶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한 ‘동학·천도교 인물 아카이브 사업’의 결과물이 나왔다. 동학·천도교 인물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춘천교구 교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동영상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번 사업은 천도교의 교인들을 통해 민족종교의 역사를 기록하고, 사회적 가치를 발견하며 보존하는 의미있는 사업으로 그 첫 번째 발걸음을 춘천교구에서 시작했다. 춘천교구는 114년의 역사를 가진 천도교의 주요 교구 중 하나이다. 이번 동영상 콘텐츠를 통하여 천도교를 알지 못했던 대중들에게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번에 제작된 총9편의 영상 콘텐츠는 향후 연구 및 문화 콘텐츠 창작을 위한 기초 자료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편집자 주- 명승철 선도사, 천도교 신앙과 함께 걸어온 길 이번 콘텐츠는 춘천교구 명승철 선도사의 인터뷰로 천도교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성장한 이야기, 어머니의 깊은 신앙심과 영부의 치유 경험을 통해 신앙의 힘을 체감했음을 알 수 있다. 명승철 선도사는 청소년 시절 천도교 청소년 수련에 참여하며 신앙에 눈을 떴고, 이후 화악산 수도원에서의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며, 군 제대 후 종학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천도교에 대한 학문적 이해를 넓혔다. 이후 춘천교구 순회 강사로 활동하며 교회를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화악산 수도원 설립 과정과 장모님, 장인어른과의 특별한 인연을 통해 수도원 건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의암 손병희 성사의 고향 청주에서도 3·1절 기념 행사 이어져청주교구(주선자)는 지난 3월 1일 의암 손병희 성사 유허지에서 봉행한 제106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여하였다. 이날 행사는 충북지구청년회의소가 주최하고 청원청년회의소가 주관하였으며 충북뉴스가 후원하였다.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손병희 선생 유허지에서 열린 청원청년회의소 주관 삼일절 기념식에서는 행사 참석자 모두 백색 두루마기를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1919년 당시 3·1 만세운동을 재현했다. 이날 기념식은 개식-국민의례-애국가 제창-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삼일절운동 경과보고 및 의암 선생 약력보고-독립선언서 낭독-기념사-인사말-3.1절 노래 제창-만세삼창-폐식의 순서로 이어졌다. 이에 앞서 지난 26일에는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사단법인 의암 손병희 선생계승사업회, 충북뉴스가 주최한 제106주년 3·1절 기념 토론회에서 <독립운동가 의암 손병희 선생의 뜻을 잇다>가 열렸다. 성강현 도훈(동의대학교 역사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손병희의 3·1운동 준비―동학농민혁명 이후부터 3·1운동까지의 활동을 중심으로> 학술 발표를 하였으며, “손병희 선생은 동학농민혁명 이후 외해된 동학 교단을 수습해 국내 최고의 종단으로 만들었고, 일제강점기 어려운 상황에서 천도교단을 민족운동의 구심점으로 삼았다"며 "독립을 위해 민족의 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언론과 교육 활동에 주력하며 10년을 준비했고, 그 결과물이 3·1운동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의암 손병희 성사는 충북 청주 북이면 출신이다. 성사께서는 북이면 금암리에서 태어나 22세까지 살아 생가를 '손병희 유허지'로 조성했다. -
이렇게 쉬운 도(道)일용행사(日用行事)가 도 아닌 게 없다. 해월 최시형 선생이 온몸으로 실천하고 보여준 이 말을 난 좋아한다. 도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교훈가>에서 말씀하신, ‘이같이 쉬운 도를 자포자기한단 말인가’ 이 말씀 또한 내가 좋아한다. 교훈가는 선생이 자녀와 조카들한테 한 말씀이다. 천도교에 몸담은 지 겨우 한 해 반이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나름 도가 텄다고 말하는 분야가 있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말이다. 입교식 뒤에 연원회 모임에서, 손수 만든 빵을 가져와서 사람들과 나눠 먹은 것은,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다. 누룩막걸리를 넣고 띄운 토종 앉은키 밀가루에 국산 잣까지 넣고 만든 빵이다. 전교인인 명암 정윤택 선생이 잠시 흐뭇한 얼굴을 보였다. 나처럼 먹는 걸 좋아하고 음식 만드는 걸 즐기는 사람은 음식값이 아무리 올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값싼 식재료로 훌륭한 음식을 얼마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까닭이다. 이를테면, 오늘 나의 점심은 10곡 식빵 봄동 샌드위치와 우유, 요거트였다. 요즘 끝물인 봄동은 된장국, 쌈, 샌드위치 등에 써먹을 수 있는 좋아하는 식재료. 추위를 이겨낸 노지 배추로서, 속알은 없을지언정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진한 냄새와 맛이 담겼다. 나는 한살림에서 조합원 활동을 하면서 음식 만들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몇 해 앞서 낡은 오븐 하나를 중고가게에서 4만5천 원에 사면서 크게 폭이 넓어졌다. 지금 우리집 아랫목에는 뚝배기 하나가 놓여있다. 토종 앉은키 밀가루에 누룩막걸리를 넣고 치댄 반죽을 이틀째 띄우고 있는 것이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구운 삼치에 밀가루 반죽을 얹어 삼치빵을 만들 것이다. 내가 빵을 만든 것은 네댓 해밖에 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을 통해 빵 만드는 곳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그곳이 너무 멀었고, 수업료가 10만 원이었다. 무엇보다 이 아는 사람이 빵 반죽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유튜브를 보면서 빵 만들기를 그냥 시작했다.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그냥 만들어 먹을 만하다. 이렇게 쉬운 도(?)를 자포자기한단 말인가? 생협에서 나온 질 좋은 두유를 띄워서 두유 요구르트를 만든 것은 누구한테 배운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고안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귀한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 수운 최제우 선생처럼 생이지지(生而知之)인 것이다. 타고났다는 얘기인데, 먹는 쪽에서 그렇다. 이 두유 요구르트는 중증장애가 있는 우리 아들한테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열량도 낮고 영양도 풍부해 저녁밥으로 먹이고 있다. 내가 날마다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소중한 일은, 아침마다 두유 요거트를 만드는 것이다. 두유 한 병에 요거트만 조금 붓고 따듯하게 해주면 된다. 난 아이들한테도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왔다. 천도교 여러 교구에서도 음식을 만들어서 서로 나눠 먹는다면, 동덕의 정이 더욱 깊어지고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교구에선 오븐 하나씩을 사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훌륭한 교육이요, 포덕이라고 여긴다. 천도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해월 최시형 선생이 한 말씀을 경전에서 읽고 쾌재를 불렀다. 음식을 먹을 때 한울님께 고하는 식고(食告)야말로 도를 얻는 지름길이라고 한 말씀이다. 이렇게 쉬운 도를 자포자기한단 말인가! 기세등등했지만, 식고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눈앞에 맛있는 것이 보이면 머릿속에서 식고가 싹 사라져버리고, 바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간다. 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원초의 욕망인가! 그 뒤로 지금까지 내가 식고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여기진 않는다. 다만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 뿐이다. 천도교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주문 수련을 하면서도 느낀 점이 있었다. 살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순간순간 힘들다, 두렵다, 짜증스럽다, 걱정스럽다 하는 나쁜 생각들이 내 마음을 옥죄고 있다. 그럴 때 ‘한울님을 내 안에 모셨습니다’ 하고 다짐하고, 21자 주문을 외우는 것은 큰 힘을 주고 있다. 어제는 <신과 인간>이란 영화를 보았다. 반군이 들끓는 혼란한 무슬림 국가인 알제리 시골 마을에서 가톨릭 수도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일곱 사람의 수도사, 한 사람의 의사는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돕고 가톨릭의 여러 수행 방법을 함께 한다. 그렇게 평생 온몸을 던져 살아왔지만, 늙어가기만 할 뿐이다. 왜일까? 형식에 지나지 않는 수행 방법만 있을 뿐, 천도교처럼 주문 수행이 없는 까닭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내가 천도교에 입교한 뒤 가장 놀라웠던 점은, 경전 내용과 주문 수행 등 내가 봐도 수긍할만한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일용행사가 도 아닌 게 없다.’ 이렇게 쉬운 도를 자포자기한다는 말인가! 글, 이상우(서울교구) 신설된 코너 일용행사가 도(道) 에서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단상과 깨달음의 글,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 교리 탐구 등을 주제로 이어집니다. 원고주제, 분량, 형식은 자유입니다. 교인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원고접수 : news@chondogyo.or.kr -
대신사님과 선열들께서 펼치신 포덕천하∙광제창생의 대의를 완성하겠습니다천도교중앙총부는 3월 10일 (월)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순도일을 맞이하여 합동위령식을 봉행하였다. 이번 대신사 순도추모식 및 순도선열 합동위령식은 개식-청수봉전-분향(집례)-심고-주문 3회 병송-경전봉독_성령출세설-위령문 낭독-천덕송 합창(제19장 대신사 환원기도가/1절~2절)-추념사-천덕송 합창(제14장 위령송/1절~2절)-분향-심고-폐식으로 이어졌다.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개식과 함께 김명덕 천도교여성회본부 부회장이 청수봉전을 하였으며 집례자의 분향에 따라 엄숙하게 추념식을 봉행하였다. 현암 윤석산 교령은 추념사를 통해 "대신사님의 성령이시여! 순도∙순국하신 선열들의 성령이시여! 대신사님과 선열들께서는 종법수호와 보국안민의 제단 위에서 이미 성령으로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후학들이 ‘수심정기’하며 ‘시천주’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라고 말하며, "대신사님과 선열님들의 성령과 하나가 되어 스승님들의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천도교는 해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순도일에 맞춰 합동위령식을 봉행하며, 동학혁명과 독립운동으로 목숨 바친 순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해 왔다. 또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순도일을 맞이해 순도 순국 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스승님의 뜻을 이세상에 실현하는 계기를 마련해가고 있다. 아래는 추념사의 전문이다. 추 념 사 존경하는 국내외 동덕 여러분! 오늘은 수운대신사님께서 좌도난정이라는 누명을 쓰시고 순도하신 지 161주기가 되는 순도일입니다. 이날을 맞아 저희 후학들은 순도∙순국하신 수많은 선열들의 성령을 받들고, 이 분들이 몸소 실천하고 또 보여주신 한울님의 뜻을 온 누리에 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동위령식을 봉행합니다. 대신사님의 성령이시여! 대신사님께서는 젊은 시절 10여 년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시며 서세동점(西勢東漸)과 삼정문란(三政紊亂)의 혼란, 각자위심(各自爲心)의 시대상을 온몸으로 체험하셨습니다. 대신사님께서는 이를 극복하고, 다시 개벽의 세상을 열어가고자 깊은 수련에 임하시어, 경신년에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는 결정적 종교체험을 통해 동학을 창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신사의 원대한 가르침을 모르는 세상의 사람들은 대신사님과 그 제자들을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이름으로 무고(誣告)하였습니다. 결국 대신사님은 세상을 향해 가르침을 베푸신 지 채 3년도 되지 않은 철종 14년 계해년 1863년 12월 조정에서 파견된 관찰사에 의하여 체포되셨고, 이듬해 3월 10일 좌도난정(左道亂正)이라는 억울한 죄명을 쓰시고, 대구 관덕당(觀德堂)에서 순도하셨습니다. 이때 대신사님 춘추는 41세였습니다. 경주 용담에서 체포가 되신 이후 경주감영에서 하루를 머무신 이후 대신사께서는 서울로 압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철종의 승하로 과천에서 그 길을 되돌려 당시 경상도 감영인 대구 감영에 구금이 되셨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대신사께서 경주부에 구금이 되셨을 때에 경주부 앞을 흐르는 형산강 가 나무에 묶이어 혹한의 추운 겨울밤을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추운 겨울에 경주에서 과천까지 압송이 되셨고, 다시 과천에서 대구까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셔야 했었습니다. 과천에서 대구로 돌아오실 때 문경 새재를 넘어 초곡이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 수많은 동학도인들이 횃불을 밝히고 눈물을 흘리며 따랐다고 합니다. 지난 대신사 출세 200년을 맞아 우리는 대신사 피체노정을 상경 길과 하경 길로 나누어 여성회를 비롯한 많은 동덕들이 참여하여 답사를 했습니다. 때로는 구간 구간을 걷기는 했습니다만, 우리는 전세버스를 타고, 날씨 좋은 가을날에 편안히 답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죄인의 신분으로 추운 겨울에 압송이 되신, 그래서 경주에서 과천까지, 다시 과천에서 대구까지 압송이 되신 대신사님의 고초는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순도∙순국하신 선열들의 성령이시여! 대신사님의 가르침대로 이 땅에 지상천국을 건설하려는 동학 천도교의 길은 실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봉건세력과 외세가 가한 가혹한 박해와 수탈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선열들께서는 이에 굴하지 않고 ‘보국안민, 척양척왜’라는 기치를 내걸어 동학의 정의로움을 천하에 떨쳤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새로운 근대를 일으킨 갑오동학혁명은 이 땅에 정의로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반봉건∙반외세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능한 조정과 결탁한 일본군은 신식병기로 수십만 동학 선열들을 무참히 학살하였고, 그 피는 강과 들녘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우리의 선열들께서는 일제의 강제 점령기에도 3.1독립운동, 6,10독립운동, 멸왜기도운동 등을 전개하며 민족정신과 천도가 살아 있음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선열께서 희생되셨습니다. 이런 비극과 천신만고 끝에 일제의 가혹한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했으나, 곧이어 빚어진 남북분단이라는 비극 속에서 민족통일 대명제를 실현하려다가 희생되신 선열들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선열들께서는 이런 숱한 고난 속에서도 ‘한울님을 모신 사람’으로서 그 바른 자세를 잃지 않으시고, 고난과 질곡을 굳건히 헤쳐 나가는, 진정한 천도교인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셨습니다. 대신사님의 성령이시여! 순도∙순국하신 선열들의 성령이시여! 대신사님과 선열들께서는 종법수호와 보국안민의 제단 위에서 이미 성령으로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후학들이 ‘수심정기’하며 ‘시천주’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 민족은 아직도 분열되어 서로 무기를 겨누며 대립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는 엄청나게 성장했으나, 정신적인 면으로는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대립하고 있으며, 사회는 안정을 찾지 못하여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신사님과 선열들의 가르침과 희생정신을 받들어야 하는 천도교는 아직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저희는 깊은 자책감을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돌이켜보며 대신사님과 선열들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뉘우칩니다. 대신사님께서는 ‘정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게으름을 살피라’고 하셨으나, 나태하기만 한 저희 후학들이 순도와 순국의 길을 가시며 펼친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탓에, 이 모든 잘못이 생겨났음을 참회합니다. 대신사님의 성령이시여! 순도∙순국하신 선열들의 성령이시여! 대신사님께서는 ‘도의 진실에 도달하려면 자기 마음 기둥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대신사님과 선열들께서 펼치신 포덕천하∙광제창생의 대의를 완성하고자, 대신사님의 이 훈도를 깊이 모시겠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대신사님의 ’시천주‘ 가르침과 하나가 되어, 삶의 모든 과정을 수련이라고 생각하며, 경전으로 전해주시는 말씀을 실천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교당마다 주문과 경전 외는 소리로 ‘동귀일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인여천’ ‘인내천’ 정신이 다시 이 땅을 풍요롭게 되살릴 수 있도록, 저희 후학들은 모든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대신사님의 성령이시여! 순도∙순국하신 선열들의 성령이시여! 아직 날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저희 앞을 수많은 난기류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 숱한 어려움을 헤치고 반드시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러므로 나아가 대신사님과 선열님들의 성령과 하나가 되어 스승님들의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문득 의암 성사님께서 양산 천성산 내원암에서 지으셨다는 시 구절이 생각납니다. 昔時此地見 今日又看看 대신사님의 성령과 의암성사님의 성령이 하나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성령과 하나가 되신 대신사님의 성령이시여! 또 순도∙순국하신 선열들의 성령이시여! 저희의 절실한 참회와 다짐에 밝고 화창하신 기운으로 감응하옵소서. 포덕 166년 3월 10일 천도교 교령 윤석산 심고 -
제106주년 3·1절을 기념하여 천도교에서 ‘3·1절 특집 역사 학습 콘텐츠-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천도교8인’을 공개한다.천도교는 제106주년 삼일절을 맞아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동학혁명과 3·1운동의 관계를 조명하는 새로운 학습용 콘텐츠를 제작하였다. 이번 콘텐츠는 동학의 정신이 3·1운동으로 계승되는 과정과 그 중심에 있었던 천도교 지도자들의 활약을 조명하며,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인들의 행적을 상세히 담고 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정치 단체와 사회 단체를 해산시키고, 무단 정치를 자행하며 조선을 억압하고 자원을 수탈했다. 이러한 암흑과 같은 시대 속에서도 천도교는 교리 강습회와 수련회를 개최하며 민족의식을 배양하는 데 앞장섰다. 천도교 지도자들은 민중과 함께 독립을 염원하며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해 나갔다. 특히 1918년 1월 8일,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천명하자 천도교 지도자들은 독립운동을 구체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동학혁명은 1894년, 외세의 침략과 부패한 조선 정부에 맞서 동학교도들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이었다. 동학군은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제폭구민(除暴救民)'의 기치를 내걸고 조선의 자주권과 민중의 권리를 되찾고자 했다. 비록 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나 당시의 동학군들은 동학이 천도교로 대고천하(세상에 널리 알림)한 이후 천도교인으로서 활동하며 동학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선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이번에 제작된 영상 콘텐츠는 동학혁명 당시 참여했던 동학교도가 나라를 잃은 후, 천도교인으로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고, 결국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 되어 모진 고난의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천도교 관계자는 “이번 홍보 콘텐츠를 통해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모두에서 활동한 천도교인 8인을 조명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3·1독립운동이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동학이 천도교를 통해 계승되고 궁극적으로 3·1운동으로 이어졌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천도교는 앞으로도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동학과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이번 콘텐츠는 천도교의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조명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sLdHsIdVS8 -
천도교, 수운 최제우 대신사 순도일 맞아 합동위령식 봉행천도교(교령 현암 윤석산)는 오는 3월 10일 (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최제우 대신사의 순도일을 맞이하여 순도∙순국하신 수많은 선열들의 성령을 받들고, 이 분들이 몸소 실천하고 또 보여주신 한울님의 뜻을 온 누리에 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동위령식을 봉행한다고 밝혔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1824-1864)는 조선 말기 새로운 사상으로 종교운동을 펼친 천도교의 창시자이다. 최제우 대신사는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며 동학(현 천도교)을 창명하였다. 엄격한 신분제의 조선 사회에서 최제우대신사의 가르침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켰고, 동학교도가 폭발적으로 늘어가자 조선의 지배층은 최제우대신사를 체포하여 참수형에 처하고 동학을 탄압하였다. 하지만, 대신사에게 도통을 이어받은 해월 최시형 신사(1827-1898)는 36년간의 도피생활을 하며 전국적으로 가르침을 펼쳐 동학교도가 수백만에 이르게 되었으며, 동학혁명을 통해 개벽된 세상을 만들고자 했으나 일제의 개입으로 수십만의 희생을 치루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해월신사도 역시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았다. 해월신사로부터 도통을 이어받은 의암손병희 성사(1861-1922)는 그로부터 10년 뒤 동학을 천도교로 체제를 바꾸었고, 엄혹한 일제하에서 3·1만세운동을 이끈 의암성사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옥고를 치르고, 순국하게 된다. 대신사의 동학사상이 면면히 흘러 수많은 천도교인들이 독립운동을 한 것이었다. 대신사님이 밝히신 자유와 만민평등의 진리를 전하고 실천하려다 수백만의 천도교인이 탄압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오늘날 한국인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나 서양 사상의 유입 때문이 아니었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였다. 대도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순도, 순국한 선열들을 추앙하고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희망찬 밝은 미래를 안겨줄 것이다. 천도교는 해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순도일에 맞춰 합동위령식을 봉행하며, 동학혁명과 독립운동으로 목숨 바친 순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해 왔다. 특히, 천도교 관계자는 “선열들이 보국안민을 위해 숭고한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을 위하여 우리 모두 성심을 모아주기를 기원하며, 더불어 민족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탄핵심판 앞두고 공식 입장문 발표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이하 종지협)가 다가오는 탄핵심판을 앞두고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종지협은 입장문을 통해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최후의 보루로서 공정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 정부, 정치권 모두는 그 결정에 승복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종지협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한편,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 구성원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지협 종교계가 가진 중재와 치유의 역할을 통해 국민 화합에 기여할 것임을 다짐했다. 입장문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등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논의해 마련한 것으로, 각 종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책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 종교계 관계자는 “탄핵이라는 국가적 중대 사안에 있어 종교계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사회적 안정을 위해 종교 지도자들이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종교계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민주주의가 온전히 지켜지고, 대한민국이 대통합을 이루는 그날을 위해 우리는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종지협은 공동대표의장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6명의 공동대표인 윤석산 천도교 교령, 고경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 최종수 유교 성균관장,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령하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명의로 이번 입장문을 냈다. 아래는 입장문의 전문이다. 탄핵심판을 앞두고 국민들께 드리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입장문 ‘대한민국, 하나 되어 나아갑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고 무거운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 가결, 현직 대통령의 구속과 내란죄 기소, 헌법재판소의 심리까지 이어지며 우리의 국가는 거센 소용돌이 속에 놓였습니다. 국제적 신인도는 추락하고, 경제적 손실은 날로 커지며, 국민들은 불안과 불편 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것은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국민들 사이까지 깊은 상처로 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극화의 벽이 높아질수록 서로의 말은 점점 닿지 않고, 이해와 대화의 길은 좁아져만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단 한 사람의 나라가 아니며,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온 나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최종 심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헌법이 존재하는 한, 그 결론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야 합니다. 민주주의란 절차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고, 그 절차를 거부하는 순간 우리 모두의 길은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최후의 보루로서 공정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 정부, 정치권 모두는 그 결정에 승복해야 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무너진 질서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다툼을 멈추고, 갈등을 넘어 화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의 진영논리에 갇힌 극단적 주장을 멈추고, 국가적 위기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야가 서로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손을 맞잡을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서로를 미워하고 불신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국민 모두가 함께 걸을 길을 모색하며, 오직 국민을 위한 정치에 몰두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위기의 순간마다 지혜와 품격으로 극복해 온 민족입니다. 이번 시련 또한 우리 모두의 힘으로, 그렇게 이겨낼 것입니다. 종교계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이 땅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국민이 다시 하나 되어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할 수 있기를, 우리의 민주주의가 온전히 지켜지고, 대한민국이 대통합을 이루는 그날을 위해 우리는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가는 길, 그 길 끝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습니다. 2025년 3월 5일 (사)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의장 진 우(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공동대표 윤석산(천도교 교령) 공동대표 고경환(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공동대표 나상호(원불교 교정원장) 공동대표 최종수(유교 성균관장) 공동대표 이용훈(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공동대표 김령하(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
포덕 166년 3월 2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만사여의의 길'설교 : 만사여의 길(선도사 수인당 손윤자) -
다함께 행복한 세상(2) -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모든 인류가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앞서, 현재 우리가 채택중인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의 주요특징과 기여도, 오류와 한계를 짚어보고, 이 체제의 근원적 토대가 되는 서구 교회신앙의 특징과 한계까지 심도있게 살펴본다 -
포덕 166년 2월 23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포덕과 정신개벽"설교 : 포덕과 정신개벽(연원회부의장 수암 김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