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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제1차 종무위원회, 5월 29일 개최…주요 안건 심의 및 격려사 이어져천도교 제1차 종무위원회가 5월 29일 오후 1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개최되었다. 서소연 교무관장의 집례로 열린 이번 제 1차 종무위원회는 청수봉전과 심고, 주문 3회 병송, 도첩 수여식 순으로 이어졌으며, 강병로 종무원장의 개회사와 박인준 교령의 격려사가 진행되었다. 도첩수여식은 박인준 교령이 이번에 임명된 종무위원들에게 직접 수여하였다. 강병로 종무원장은 개회사에서 “새 집행부가 출범하고 준암 박인준 교령님을 모시고 야심차게 천도 사업을 추진하려 합니다. 교령님의 뜻과 희망을 받들어 교헌과 규정, 절차에 맞게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라며, “여러 위원님들께서 긍정적인 비판과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첫 회의인 만큼 좋은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길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인준 교령은 격려사를 통해 “종무위원회는 종무원을 비롯한 각 기관의 업무가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결정하는 종단의 핵심 기구입니다. 위원 여러분께서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로, 신앙심을 바탕에 두고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가 좋은 논의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종무위원회에서는 총 6건의 안건이 심의되었다. ① 동학교육수련원 수탁 타당성 조사연구 용역의 건, ② (주)신인간사 포덕 166년 예산 지원(안), ③ 중앙도서관 냉방기 교체의 건, ④ 교령사 소파 교체의 건, ⑤ (구)천도교예산교구 교당 매각의 건, ⑥ (사)동학민족통일회 지원금 재개 건 등이 논의되었으며, 각 안건은 천도교 조직 운영과 종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이 외에도 해월신사 탄신 200년 기념 추진사업 보고, 특별회계 사업 현황 보고, 시천주복지재단 이사회 결과 보고 등의 기타 안건이 상정되었다. -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여성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성료한국민족종교협의회 여성회(이하 여성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5월 29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 22층 다이아몬드룸에서 열렸으며, 여성회의 지난 20년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미래를 향한 비전을 공유하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되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명덕 천도교여성회장이 참석해 축사를 전하며 “우리 여성회는 민족종교의 정신을 계승하고 사회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힘써왔다”며 “앞으로도 화합과 나눔의 정신으로 지속 가능한 평화와 공동체 발전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차귀 천도교부산시교구장이 여성회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감사패를 수여받았다. 박 교구장은 여성회 창립부터 20년간 회장직을 맡아 여성회의 조직적 기반을 다지고 민족종교 간 연대 강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여성회의 창립과 성장을 함께해 온 시간들이 매우 뜻깊었다”며 “앞으로도 민족종교의 가치를 실현하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천도교여성회 회원들은 “민족종교 연합단체의 정체성을 잘 지키며 이끌어 오신 박차귀 명예회장님이 자랑스럽습니다, 그 뜻을 잘 이어가야 되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행사는 축하공연과 함께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참석자들의 큰 호응 속에 따뜻하고 뜻깊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여성회는 앞으로도 민족종교 전통을 계승하며 여성의 역량 강화와 사회적 연대를 위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사진 임남희 -
근대 시기 천도교와 3.1혁명-근대를 관통한 천도교의 ‘독립정신’(3)본 글은 포덕 164년,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열린 '동학·천도교 그리고 3·1운동과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3·1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이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지난 호에 이어) 2) 동학농민혁명이 표방한 근대적 평등사상 1864년 최제우가 처형된 후 최시형이 2대 교주가 되었다.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은 최시형에 의해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더욱 진보하였고, 교세는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더욱 급속하게 확장되었다. 사인여천은 말 그대로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고 존중하라는 의미로 시천주 사상보다 더욱 구체적, 적극적으로 인간의 평등을 강조한 사상이다. 종교적 성격이 강한 동학의 평등관이 보다 근대적이고 세속적 의미의 평등관으로 진보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러한 사인여천의 평등관을 공유한 동학교도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었다. 동학사상의 근대적 성격은 전주화약에서 제기되었던 ‘폐정개혁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동학농민혁명에서 농민군이 천명한 폐정개혁안의 조목들이다. 1. 전운소(轉運所)를 폐지할 것 2. 국결(國結)을 하지 말 것 3. 보부상들의 작폐를 금할 것 4. 도내 환전은 옛 감사가 거두어갔으니 다시 징수하지 말 것 5. 대동미 상납 전에 각 포구 잠상의 미곡무역을 금할 것 6. 동포전은 각 집마다 봄, 가을 2냥씩으로 정할 것 7. 탐관오리들을 파면, 축출할 것 8. 임금을 둘러싸고 관직을 팔아 국권을 조롱하는 자들을 모두 내쫓을 것 9. 관장이 된 자는 해당 경내에 입장(入葬)할 수 없으며, .또한 논을 거래하지 말 것 10. 전세는 전례에 따를 것 11. 연호(烟戶)의 잡역을 줄일 것 12. 포구의 어염세를 혁파할 것 13. 보세(洑稅)와 관답(官畓)은 시행하지 말 것 14. 각 고을에 원이 내려와 백성의 산지에 늑표(勒標)하고 윤장(倫葬)하지 말 것 15. 균전어사를 혁파할 것 16. 각 읍 시정 물건들에 대한 분전수세(分錢收稅)와 도가명색(都賈名色)을 모두 혁파할 것 17. 백지 징세와 사전 진결을 거두지 말 것 18. 대원군을 국정에 간여토록 하여 민심이 바라는 대로 할 것 19. 진결(賑結 )을 혁파할 것 20. 전보국이 민간에 대한 피해가 크니 혁파할 것 21. 각 읍 관아에서 필요한 물건은 시가대로 사서 쓸 것 22. 각 읍 아전을 임명할 때 돈을 받고 하지 말고 쓸만한 사람을 택하여 쓸 것 23. 각 읍 이속들이 천금을 축냈으면 그 자만 처형하고 친족에게 징수하지 말 것 24. 묵은 사채를 관장을 끼고 억지로 거두는 일을 금할 것 25. 동학교도를 무고히 살육하지 말며 동학과 관련하여 가둔 이를 모두 신원할 것 26. 京營邸吏料米는 과거의 예에 따라 삭감할 것 27. 포구에서 장사하는 각국 상인들의 동성 시장 출입을 금하고 아무 곳에서나 마음대로 행상하지 못하게 할 것 (1-14조는 「전봉준판결선고서원본」(『동학관련 판결문집』,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 1994), 15-27조는 정창열의 「갑오농민전쟁 연구」(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1, 170-171쪽) 참조. 25-27조는 정창열이 다른 폐정개혁안들을 분석하여 추가한 것임.) 이들 조항은 세제나 탐관오리의 횡포에 대한 개혁을 주된 내용으로 하며, 심지어 국정의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조항에는 보국안민, 축멸양왜 등 농민군이 봉기하면서 내세운 핵심 가치가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다. 주로 ‘안민’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확인될 뿐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여 봉기하였던 2차 봉기의 성격 및 구호가 반영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조항은 정부군과 교전하여 전주화약을 맺을 당시 농민군 지도부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차 봉기 시에는 갑오개혁의 영향과 반일, 반외세에 대한 내용이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어야만 한다. 농민군의 폐정개혁안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였으므로 이들 폐정개혁안은 농민군의 봉기과정을 따라 점차 완성적인 모양을 갖추어 갔을 것이다. 2차 봉기를 앞둔 상황, 즉 갑오개혁의 영향을 받고, 일제의 침략에 분노하던 시기 동학 집강소의 ‘폐정개혁안’에는 당연히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이나 근대적 개혁의 요소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 내용으로 볼 때 오지영의 『동학사』 (오지영, 『동학사』, 민학사, 1975.)에서 기록된 폐정개혁안 12개조는 반외세와 갑오개혁의 내용이 대폭 반영되어 있으므로 2차 봉기 당시 개정된 폐정개혁안일 가능성이 있다. 이 폐정개혁안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인물이 직접 기록한 것이므로 충분히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조항에는 2차 봉기에서 목적으로 천명한 척왜에 대한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고, 갑오개혁의 영향을 받은 듯한 신분 개혁 등의 조항도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동학사』의 폐정개혁안 12개조의 내용이다. 1. 도인과 정부와의 사이에는 숙혐(宿嫌)을 탕척(蕩滌)하고 서정(庶政)을 협력할 것 2.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사득(査得)해 일일이 엄징할 것 3. 횡포한 부호배(富豪輩)를 엄징할 것 4. 불량한 유림과 양반배는 못된 버릇을 징계할 것 5. 노비 문서는 불태워버릴 것 6. 칠반천인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 머리에 쓰는 평양립은 벗어 버릴 것 7. 청춘과부의 개가를 허락할 것 8. 무명잡세는 일체 거두어들이지 말 것 9. 관리 채용은 지벌(地閥)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10. 왜와 간통하는 자는 엄징할 것 11. 공사채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12.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하게 할 것 등이다. (이 12개 조의 폐정개혁안은 오지영이 『동학사』에서 가공적으로 만들어 내 신뢰할 수 없다는 일부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폐정개혁안 자체는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12개 조는 여러 차례에 걸쳐 주장된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가 집약,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영섭(「『(역사소설) 동학사』의 12개조 폐정개혁안 문제」, 『시대정신』 68, 2015, 136-147쪽), 박종근(「갑오농민전쟁(동학란)에 있어서의 「전주화약」과 「폐정개혁안」( 『역사논평』 1962년 4월호(일본)), 한우근(「동학군의 폐정개혁안검토」(『역사학보』 23, 역사학히, 1964, 55-69쪽) 등이 사료성을 부정하는 연구를 발표하였지만, 12개 조항에는 보국안민, 반외세라는 이들의 봉기 목적에 그대로 부합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게 반영되지 못하였다.) 앞서 살펴본 27개조 보다 상당히 정돈이 되었고, 일제에 대한 태도와 갑오개혁의 내용이 일부 반영된 점으로 보아 여러 폐정개혁안 중에서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평등을 일관되게 표방하였던 동학의 핵심사상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이 기록은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들 폐정개혁안으로 동학농민혁명의 혁명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이 목표로 하는 사회가 성리학적 신분질서를 혁파하고 모든 인간의 평등을 구현하는 근대적 가치의 사회였음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동학혁명은 한민족의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의 하나로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평등관이 근대적 형식을 갖추고 근대성을 확보하는 결적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한국의 전통사상 속에는 이미 근대의 핵심 가치인 평등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였고, 수운 최제우는 전통사상 속에서 이러한 평등의 가치를 추출하여 주창함으로써 한국이 가야 할 근대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러한 동학의 평등사상이 전국의 민중들에게 급속하게 전파되는 통로가 되었고, 이러한 평등사상의 전파는 유교적 봉건사회의 낡은 신분질서를 급속하게 해체하고 근대민족으로서 한민족의 출현을 촉진하는 교량 혹은 징검다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한국사회의 근대적 성격은 더욱 심화되었고, 동학혁명이 제시한 근대적 개혁의ㅣ 의제는 이후의 2, 3차 갑오개혁이나 대한제국의 광무개혁에 반영되면서 한국적 근대를 전망하고, 견인하는 핵심 기준과 요소들로 작용하였다. 3) 3.1혁명과 동학-근대민족 한민족의 탄생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의 근대를 설계하고,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조정과 유생, 일제의 조직적이며 가혹한 탄압은 동학 세력에게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 농민군의 수장이었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이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2대 교주 최시형 역시 1998년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동학의 도통을 이어받아 3대 교주가 된 손병희는 국내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오세창 등 개화파와 교류한 손병희는 1904년 동학교단이 주도하는 ‘진보회’를 통해 ‘갑진개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갑진개화운동은 문명개화론에 입각한 반봉건, 근대화 운동이었지만, 동학농민혁명이 보여준 혁명적 성격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 1905년 손병희는 동학이라는 교명을 천도교 변경하고, 일진회계 천도교인들을 축출하면서 교단을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천도교는 손병희를 중심으로 권동진, 오세창, 양한묵 등 문명개화론을 지지하는 교인들에 의해 운영되면서 교단 조직과 교리가 근대적으로 재편되었다. 현재 천도교에서 보이는 3권분립 형태의 교단 구조도 이 시기의 개혁을 통해서 도입된 것이다. 손병희는 최제우가 제시한 인간평등의 사상인 시천주 사상을 인내천(人乃天)으로 재해석하였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으로 시천주, 사인여천 등과 같은 내용이지만, 보다 근대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인간의 평등을 지향하는 천도교의 교리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 시기 천도교 주도 세력은 포교를 통해 교세를 확장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동시에 민족 간 평등을 위해 한국의 독립을 이루고, 권력을 장악하여 계층, 계급 간 평등을 구현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다. (조규태, 「3.1운동과 천도교」, 『유관순연구』 1, 천안대학교 유관순연구소, 2020, 184쪽.) 손병희는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조국을 되찾기 위해 제2의 동학혁명을 전국 천도교도의 주도적 참여와 선도적 제휴로 민중의 호응을 받아 착수해야 한다’ (이종일, 『목암비망록』, 1919. 9.30.)고 인식하고 있었다. 손병희가 이 시기 비록 애국계몽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전술을 주로 구사하였지만, 이는 제2의 동학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펼친 위장 전술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손병희가 근대화된 일본을 목격하고 개화파와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실력양성 등 문명개화론의 입장을 수용한 것은 사실지만, 『목암비망록』의 기록처럼 1910년 일제의 조선 강점이라는 충격적 사건은 손병희가 민족운동의 전략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919년 1월 손병희는 최린 등에게 “장차 우리 면전에 전개될 시국은 참으로 중대하다. 우리들이 이 천재일우의 호기를 무위무능하게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이미 정한 바 있으니 제군은 10분 분발하여 대사를 그롯됨이 없도록 하라.”고 (최린, 「자서전」, 『여암문집』 상, 여암선생문집편찬위원회, 1971, 182쪽.) 말했다고 한다. 적어도 1919년 1월 당시에는 손병희가 독립운동으로 대대적인 3.1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정황은 다른 문서에서도 확인된다. 손병희는 1919년 1월 5일부터 봉황각, 해주, 의주, 길주, 원주, 경주, 서산, 전주, 평강 등지를 선정하여 특별기도를 실시하도록 하였고, 각각 4명씩의 간부를 파견하였다. (「오세창 신묹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1, 국사편찬위원회, 1990, 53-54쪽.) 이 때의 상황을 『천도교경주교구연혁』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自60年 1月8日至 同年 2月25日 49日間 3月1日 독립선언식을 앞두고 중앙총부에서 지명, 특별기도롤 본교당에서 행하다.” 『천도교경주교구연혁』(최인경, 「3.1운동의 전개와 천도교」, 『신인간』 통권 320, 신인간사, 2019, 18-19쪽에서 재인용. 이 기록을 보더라도 손병희가 1919년 1월 이전에 혁명적 독립운동으로 3.1운동을 계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종이 1월 21일 일제에 의해 독살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천도교가 계획한 만세운동은 더욱 강력하고 커다란 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1919년 1월 하순 손병희를 중심으로 하는 천도교 지도부는 독립을 선언하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수립하였다. (최린, 앞의 책, 앞의 자료, 182쪽.) 이렇게 결정된 독립운동의 방식과 원칙에 따라 천도교 지도부는 여러 세력과의 제휴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천도교의 시도는 그들이 접촉한 한규설, 김윤식, 윤치호 등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을 맞았다. (「최린 신문조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1, 국사편찬위원회, 1990, 135-137쪽.) 이런 상황에서 이승훈이 선천, 평양 등의 기독교 인사들과 접촉한 후 서울에 아서 권동진, 최린 등과 만났는데 천도교 인사들은 기독교와 천도교가 힘을 합쳐 독립운동을 하되, 그 방식은 독립청원이 아닌 독립선언의 형태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권동진 신문조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1, 50쪽) 천도교 측의 제안을 받은 기독교 측은 2월 23일 함태영의 집에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천도교 측의 제안대로 독립선언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이승훈, 함태영 등을 대표로 선정하여 권동진, 오세창, 최린 등과 만나 독립선언을 결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최인경, 앞의 글, 20-22쪽.) 한편, 천도교 지도부는 불교 측과의 연합도 진행하였는데 최린으로부터 2월 24일-27일 독립운동의 계획을 들은 한용운은 참여하기로 하고 백용성을 동지로 끌어들였다. (최인경, 앞의 글, 22쪽.) 3.1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천도교 지도자는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최린,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나인협, 박준승, 양한묵, 이종일, 이종훈, 임례환, 홍기조, 홍병기 등으로 모두 15명에 달하였다. 천도교는 ‘3.1 독립선언’의 과정에서 단지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살펴보았듯이 다른 종교계와 활발히 교섭하며 연합을 성사시켰고, 모든 경비를 충당하였으며, 직접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하기까지 하였다. 아울러 만세운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도 지역의 천도교 신자들은 각자의 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천도교의 역량이 없었다면 3.1독립선언서, 3.1만세운동, 3.1혁명은 결코 성립될 수 없었다. (‘3.1독립선언서’는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3.1만세운동은 3.1혁명이 완성되어가는 운동의 방식이었다. 3.1독립선언서가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3.1만세운동으로 잠재되었던 민족의식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었고, 이렇게 한민족의 근대적 민족의식이 드러남으로써 근대민족 한민족이 역사의 실체로 등장하였다. 이렇게 근대민족을 출현시킨 질적,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사건을 3.1혁명이라 지칭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천도교는 이들 의제를 논의할 때 당연히 그 중심에 위치해야만 한다. 3.1혁명이 중대한 의의는 전 민족이 하나의 가치와 목소리로 통합되었다는 점이다. 국내의 농민, 노동자, 청년, 학생 등 거의 모든 계층의 민족구성원이 하나가 되어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천명하였고, 중국, 러시아. 일본, 구미의 한인들 역시 이러한 ‘대동단결’의 흐름에 동참하였다. 동학에서 시작된 조선 민중들의 근대적 자각은 일제의 수탈과 함께 진행된 근대적 모순들과 부딪히면서 평등과 해방, 조선의 독립이라는 확고한 근대의 지향점으로 수렴되었다. 드디어 근대적 교육을 받은 지식인, 청년, 학생, 일제에 의해 근대적으로 재편되어가던 산업을 통해 양산된 의식화된 노동자, 일제의 수탈로 토지와 곡식을 수탈당해 붕괴 직전에 직면한 농민들은 그들의 근대적 민족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3.1혁명을 폭발시켰고, 3.1혁명은 그들을 근대적 각성과 근대적 의식으로 무장한 근대민족 한민족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켰다. 이렇게 거대한 역사적 지표가 되어버린 3.1혁명이 전개될 수 있었던 사상적 근원에 동학의 평등사상이 있었다. 동학사상의 전파가 한국적 근대의 핵심 가치인 평등이념을 제시함으로써 한국적 근대의 시작점이 되었고, 동학혁명을 통해 이러한 평등사상이 민중의 근대적 전망으로 공유되었으며, 이 평등사상에 입각하여 3.1독립선언과 3.1혁명이 전개되었다는 점 (독립선언서에 이러한 평등이념과 평화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무오독립선언서’나 ‘3.1독립선언서’ 모두 한결같다. 5장의 내용 참조.)을 고려한다면 동학이 주도한 한국적 근대의 시작은 3.1운동을 통해 근대민족 한민족이 출현함으로써 하나의 역사적 여정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제우의 동학 창시로부터, 동학혁명, 3.1혁명으로 이어진 동학, 천도교 주도의 근대적 여정은 3.1혁명을 통해 근대민족 한민족이 탄생과 함께 한 단원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쉽게도 3.1혁명의 시기까지 한국의 근대를 주도하였던 동학과 천도교는 역사의 주역에서 주변인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 여정의 중심에는 동학 창시와 포교-동학농민혁명-3.1혁명이라는 거대한 근대의 역사를 써나가기 위해 막대한 피해를 기꺼이 감수한 천도교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계속) 글, 장우순(성균관대학교) -
천도교 대동교구와 한강교구, 입교 소식 전해와천도교대동교구와 한강교구에 반가운 입교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4월 20일, 대동교구에서는 최강호, 석선화 부부가 부암 정덕재 남진포 도정의 인도로 입교하였다. 또한 4월 27일에는 한강교구에서 송희숙 동덕이 오재일 전교인의 인도로, 장우순 동덕은 정갑선 동덕의 전교로 각각 입교하였다. 신앙의 길에 새롭게 들어선 이들을 모든 교인들과 함께 환영하며, 내 안에 모신 한울님께 늘 심고하며, 한울님과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를 기원한다. 대동교구와 한강교구 교역자들은 “입교는 새로운 출발이며, 신앙의 첫걸음을 내딛는 귀한 인연”이라며 “교당과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이들의 신앙생활을 뒷받침하고, 삶 속에서 한울님의 은덕을 체득해 가실 수 있도록 함께 정성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천도교인은 입교를 통해 한울님과 스승님의 은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을 배우고 실천한다. 신입교인들의 신앙여정에 한울님의 특별하신 감응있기를 심고한다. 사진 제공 : 정덕재 -
천도교여성회, 상반기 금요강좌 제1강 개시천도교여성회는 지난 5월 23일 오후 2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2025년 상반기 금요강좌를 개최했다. 이번 강좌는 제1강으로 신인간사 대표이사인 휘암 윤태원 강사로 초청되어 “천도교 교헌 톺아보기”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당일 강좌에는 천도교 여성회원과 일반 참석자 등 30여 명이 참여해 천도교 교헌의 역사적 맥락과 현대적 의미를 함께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윤태원 강사는 강의에서 천도교 교헌의 조항을 중심으로 천도교의 제도 변천사를 짚어보며 그 역사적 흐름과 사상적 의의를 해설하였다. 특히 '동학 시대의 제도 형성(1860~1905)', '천도교 대헌의 제정과 중앙집권 교회 제도 수립(1906~1910)', '1910년 대헌 개정과 제도 정비' '이후 주요 제도 변화 및 분열' 등 네 시기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 윤태원 강사는 교헌의 조항들을 조목조목 짚으며, 그 안에 담긴 사상과 시대적 배경을 해설하고, 이를 오늘날 신앙과 실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천도교여성회는 “이번 강좌를 통해 교헌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교단의 정체성과 신앙 실천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천도교여성회의 금요강좌는 신앙과 교리,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 및 자료제공 : 천도교여성회 -
서울교구 어린이청소년시일학교, 풍물교실로 신명을 배워가요천도교 서울교구 어린이청소년시일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풍물교실이 열리고 있다. 현재 풍물교실에서는 북을 중심으로 기초 장단을 배우고 있다. 처음 북채를 잡아보는 어린이들은 서툰 동작이지만 점점 소리에 익숙해지고, 장단에 맞춰 북을 두드리며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 조금씩 ‘신명’이 무엇인지 몸으로 배워가고 있다. 풍물 수업은 휘암 윤태원 동덕(전 서울교구 교구장, 현 신인간 대표)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있다. 장단 하나를 익힐 때도 재미있게 따라올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여 풍물교실 참가자들에게 흥미를 잘 이끌어내고 있다. 휘암 윤태원 동덕은 “풍물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우리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 신명을 느끼는 과정입니다. 학생들이 북소리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한울님과 하나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흐뭇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둥 둥~, 덩더더더덕 짝” 북소리 안에 참가자들의 웃음과 에너지가 담겨, 어린이 시일학교의 공간을 신나게 채워나가고 있다. 한편 서울교구 어린이청소년시일학교에서는 일요일 오전 11:00~12:00 서울교구 성화실에서 운영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집례와 경전봉독을 하는 시일식을 하고, 이후에는 요리교실, 박물관답사, 영화감상, 풍물교실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7대 종교가 함께 걷는 ‘DMZ 생명평화순례’… 천도교 위령식 참여자 모집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주관하는 ‘DMZ 생명평화순례’가 지난 5월 19일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파주 임진각까지 총 385km 구간을 20일간 걷는 일정으로 진행 중이다. 이 평화순례는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따라 7대 종교가 구간을 나누어 걷고, 각 종단의 전통 의식으로 순국선열을 기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위령식을 함께 펼친다. 이번 순례 일정 가운데 천도교는 오는 6월 5일(목) 파주 화석정에서 천도교 의례를 통한 생명평화 위령식을 진행한다. 이에 평화에 뜻을 함께할 참여자를 모집한다. 천도교 위령식 참여자는 6월 5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천도교수운회관에서 집결해 파주시 율곡습지공원으로 이동한 후, 점심 식사 후 순례길 걷기와 위령식에 함께하게 된다. 천도교 의식은 오후 2시 화석정에서 봉행되며, 이후 서울로 복귀해 해산하는 일정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DMZ 일대를 직접 체험하며 천도교의 위령의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로, 모집 인원은 30명, 참가비는 1인당 1만원이다. 참가를 희망하는 시민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자세한 문의는 동학민족통일회 사무총장(010-6828-8055)에게 하면 된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https://form.naver.com/response/T4APtq-4MtCVGsp2GZDGaw -
포덕 166년 5월 25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지와 무지""천도교에서 말하는 '앎'과 '무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정암 박정연 선도사는 설교를 통해 천도교에서 말하는 '앎'은 세상의 지식들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근본적인 이치를 깨달아 아는 지혜를 의미하며, '무지'는 아는 바가 많더라도 진리의 핵심과 중심을 찾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내용을 말했다. -
한영 문화교류의 장… 최정대 직접도훈, 찰스 3세 국왕 생일 축하연 참석최정대 직접도훈(『코리아타임스』 칼럼니스트)이 지난 2025년 5월 22일 저녁, 서울 주한 영국대사 관저에서 열린 찰스 3세 국왕의 생일 축하연에 참석해 한영 문화 교류의 뜻깊은 장을 마련했다. 이날 최 직접도훈은 콜린 크룩스(Colin Crooks) 주한 영국대사에게 『2024년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한국 저널(Transactions 제98권)』을 증정하였다. 해당 저널에는 한국 고고학의 선구자 최남주 선생(1905~1980)의 생애를 조명한 최 직접도훈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어 학술적 의미도 깊다. 행사에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주한 외교사절 등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최남주 선생은 경주 지역에서 신라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에 일생을 바친 인물로, 한국 고고학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특히 1957년 6월, 주한 영국대사로 부임한 휴버트 존 에반스(Hubert John Evans)와의 인연을 계기로 한영 문화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에반스 대사는 같은 해 9월 가족과 함께 경주를 방문해 석굴암과 불국사를 직접 답사하고, 최 선생으로부터 신라 문화에 대한 깊은 강의를 들은 바 있다. 이 만남은 이후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Royal Asiatic Society Korea)의 활동으로 이어졌고, 회원들은 해마다 경주를 방문해 최 선생의 해설을 통해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이러한 인연은 지금까지도 지속되며, 양국 간 학술문화 교류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최정대 직접도훈은 2023년 5월 찰스 3세 국왕 대관식 축하연에도 참석하였으며, 2025년 5월 9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유럽의 날(Europe Day) 행사에 참가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소개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도 경주가 동학(천도교)의 발상지이자 세계적 문화유산을 품은 도시임을 주한 외교사절들에게 알리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2023년 9월,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창립 123주년을 기념해 영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천도교에 대한 소개 시간을 마련했으며, 콜린 크룩스 대사에게 직접 『Transactions』 제97권을 전달했다. 이 학술지에는 최 직접도훈의 『동학의 인본 평등주의』 및 천도교 경전에 대한 영문 논문이 실려 국내외 연구자 및 외국 독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축하연 참석을 계기로 한영 간의 문화 학술적 교류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기대되며, 특히 신라 문화와 동학 사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최정대 직접도훈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사진, 자료제공 최정대 -
[칼럼] 이제는 K-동학이다K-동학,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인다. 왜 그럴까? K-팝, K-드라마 등 한류문화가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무슨 원류가 있어서 그럴까? 향후 무엇을 해야 할까? 인공지능 쳇GPT에 “K-동학은 어떤가?”하고 물어보았다. 필자는 그 내용들을 편집하고 아이디어를 추가하였다. "K-동학"이라는 개념은 "하늘이 곧 사람이다"라는 동학 정신을 바탕으로 K-동학을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한국형 대문명전환 프로젝트로 확장시키는 청사진이다. K-동학이 필요한 이유는 역사적 자긍심과 정체성 회복, 서구 중심 세계관에 대한 대안으로 생명 중시의 문명 패러다임 제시, 현대 한국 사회 문제에 대한 통합적 해법, 새로운 세대와 연결되는 한국적 세계 시민 의식, 문화적/정신적 주체성 확립이다. BTS, K-드라마,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정신적 기반이나 철학은 부족한 상황으로서 K-동학은 이러한 흐름에 정신적 근간을 제공할 수 있는 한국형 인문 가치 철학이다. "K-동학"에 기반한 교육, 정치, 사회 실천, 문화, 기술, 국제협력, 실천운동 모델을 제안한다면 다음의 7가지로 요약된다. 가장 먼저 선행적인 동학사상의 현대적 해석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인내천(모든 인간의 존엄과 평등), 사인여천(상호존중과 공동체 중심)에 대한 현 시대적 해석이 요구된다. 1. 교육 모델: "K-동학 인성·민주시민 교육" ‘인간 존엄과 동귀일체를 기초로 한 전인교육, 민주 시민 양성, 「인내천과 나」,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는 법」, 「동학사상과 현대사회」’, ‘시천주와 수심정기에 기반한 마음 공부(주문)’, ‘성경신의 교육모델 개발’, ‘개벽과 무위이화 사상’으로 인성∙민주 시민교육을 선도한다. 2. 정치 모델: "동학적 시민 정치" ‘동학헌장 제정운동: 인간존엄, 자주, 연대를 헌법 정신에 반영하는 시민운동’, ‘삼전론(도전, 언전, 재전)에 입각한 사회 조직 혁신’을 하여 동학적 시민 정치에 선도적 역할을 한다. 3. 사회 실천 모델: "인내천 공동체 구축“∙ ‘동학혁명∙삼일운동 정신 계승 모델 개발’, ‘인간 중심, 생명 존중, 상생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재건’, ‘삼경사상(경천, 경인, 경물)에 기반한 생태∙환경 보전’, ‘사람을 위한 경제 강조, 동학정신을 운영원리로 내세운 인내천 마을 조성’, ‘사람 중심 복지 실현: 취약계층 대상 사람 존엄 케어 시스템’으로 인내천 공동체 구축을 한다. 4. 문화 모델: "동학적 감성 르네상스" ‘동학의 세계관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하여 대중문화, 예술,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게 함’, ‘K-동학 스토리텔링 콘텐츠', '드라마, 웹툰', '게임에서 동학 세계관 재해석' (예: SF와 결합한 ‘미래의 인내천 사회’)‘, ’동학적 미학 운동으로 ‘하늘과 사람, 자연의 조화’ 시각 예술 운동 (전시, 건축, 디자인), ’동학의 의례에서 착안한 공동체 축제, 향아설위, 생명예절, 인내천 선언의 날 기념제‘, ’서로 존중하는 큰 절하는 날‘로 동학 르네상스 시대를 구현한다. 5. 기술 모델: "사람 중심 디지털 전환" ‘첨단기술이 인간과 공동체의 존엄을 중심으로 작동하도록 설계’, ‘인내천형 AI 윤리 원칙 수립: 인간 존엄과 공정성, 상호존중을 내재화한 AI 알고리즘 기준 마련’, ‘K-동학 알고리즘 윤리 헌장 제정’으로 사람 중심의 디지털 사회를 구현한다. 6. 국제 협력 모델: "K-동학 글로벌 연대" ‘동학의 평등·생명·연대 사상을 글로벌 공동체 구성의 철학으로 확장’, ‘글로벌 시민사회와 철학자, 운동가들이 동학사상을 바탕으로 대화하는 인내천 포럼’, ‘인도의 간디즘, 티벳 불교, 기타 세계적 사상과 연계한 가치동맹 결성’, ‘동학 유스 리더십 프로그램으로 세계 청년 대상 ‘동학 인턴십’, 평화 마을 탐방, 연대 프로젝트 지원‘ 하는 국제협력을 지원한다. 7. 실천운동 모델: "K-동학 생활운동 네트워크“ ‘사계명, 임사실천십개조, 십무천 중심 생활 실천’, ‘내칙 내수도문 ∙ 부화부순 가정생활 실천’,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 중심의 생활철학’, ‘하루에 한 사람을 존중하는 구체적 실천 공유, 상호존중 인사하기, 경청하기, 대화모임 등 소통 중심의 공동체 재건’, ‘인내천 마크 인증 제품’, ‘동학 기반 기업 ESG 모델’을 위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향후 "K-동학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을 정신 자산으로 포스트자본주의 시대의 대안적 공동체 윤리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교육과 기술, 정치와 문화 전반에서 '사람 우선'이라는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수 있으며, ‘인간-기술-자연의 조화’라는 21세기 윤리모델을 형성할 수 있다. K-동학의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K-동학이 성공적으로 구현된다면 인간 존엄, 공동체 연대, 생명 중심 가치를 기반으로 한 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며, 이는 한국 사회의 혁신뿐 아니라 세계적 대안 문명 담론에도 기여할 수 있다. K-동학의 주체는 누구인가? K-동학의 성공적인 실현을 위해서는 특정 개인이나 조직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는 다중 주체적 연대가 필요하다. 천도교를 비롯한 동학관련 단체가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교육계, 시민사회, 청년 세대, 지자체 및 지방의회, 국가 및 중앙정부가 큰 그림 속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래 동안 K-동학을 기다려 왔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머뭇거려서 K-동학을 선점 당하지 않도록 착실한 준비와 마스트플랜이 조속히 필요하다. K-동학이 성공하면 항상 교인들의 가슴 속에 품고있는 포덕천하(한울님의 덕을 온세상에 폄), 보국안민(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 광제창생(수많은 백성을 널리 구제함), 지상천국 건설(한울님의 뜻대로 지구상의 이상적인 사회,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회 건설)이 현실화 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글 이암 정의필(남정포 도정, 울산대 명예교수) *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