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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와 3 · 1운동(19) "와전・왜곡・과장・날조 등으로 인한 잘못된 사회적 통념"『천도교와 3.1운동』은 천도교중앙총부 교화관에서 발행한 책으로, 3.1운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천도교의 역할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이창번 선도사가 집필하였으며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상적·조직적 기여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3.1운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천도교가 지닌 민족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자료로 제공하고자 저자의 동의를 얻어 천도교인터넷신문에서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지난 호에 이어) 2. 태화관에서의 독립선언서 낭독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잘못된 설(說)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하나는 3・1운동 당시 태화관(泰和館)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지 않았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만해 한용운이 낭독하였다는 설이다. 그런데 이 역시 두 가지 설이 모두 와전된 것이며 진실이 아님을 밝혀둔다. 우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에 왜 모였겠는가.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3・1운동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게 된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지 않았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민족대표들은 결코 최후의 만찬을 즐기기 위해 그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이러한 주장은 민족대표들의 심문조서에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는 언급이 없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맹점을 이용해서 한발 더 나아가 일부에서는 독립선언서를 만해가 낭독하였다고 무책임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지 않았다는 주장보다 한술 더 뜬 진실 왜곡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왜곡 사실에 대한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묵암비망록(黙菴備忘錄)『에 확연히 그 진실이 드러나 있다. 『묵암비망록』은 천도교 측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묵암 이종일(黙菴 李鍾一)이 작성한 것이다. 묵암은 어느 누구보다 독립의지가 강하고 성격이 매우 강직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된 당일의 『묵암비망록』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12시 전까지 집에 남겨두었던 선언서는 거의 다 배포하였다. 식사도 거의 못하고 서둘러 태화관(泰和館)으로 갔다. 4명이 불참한 가운데 오후 2시경 긴장 속에 독립선언서를 다시 (민족대표들에게-필자 주) 배포해주었다. 의암(義菴)이 나에게 직접 독립선언서를 인쇄・배포하였으니 크게 낭독하라기에 오자(誤字)를 고치고 그렇게 따랐다.”(묵암비망록, 1919년 3월 1일자) 이것이 위의 두 낭설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다. 민족대표들은 전날 독립선언 장소를 탑골공원에서 태화관으로 바꾸었다. 장소를 바꾼 것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하게 되면 흥분된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로 인해 일본경찰에게 무자비한 탄압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한 배려에서였다. 그래서 태화관에서는 오후 2시 기독교 측 민족대표 4명이 불참한 가운데 묵암이 참석한 민족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고 의암성사의 지시에 따라 선언서를 낭독했던 것이다. 다만 그 자리에서 만해는 일동에게 간단한 인사말을 하였다고 『묵암비망록』은 밝히고 있다. 사실이 이처럼 분명한데도 특정인물의 업적을 과장하기 위해 근거 없는 낭설을 퍼뜨리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불경(不敬)이 될 뿐 아니라 민족대표 전체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3. 유관순과 3・1운동 3・1운동에서의 유관순의 활동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3・1운동 당시 유관순의 역할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논할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3・1운동이 마치 유관순의 주도로 이루진 것과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광경이지마는 청소년들에게 “3・1운동을 누가 했는가” 하고 물으면 열 사람에 7, 8명은 “유관순이 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청소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지성인라는 사람조차 맹목적으로 그렇게 추종하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작년 3・1절에 MBC TV는 ‘아우내 장터의 3・1운동’ 재현행사를 중계하면서 “1919년 3월 1일 유관순 열사가 이끌며 전국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운운하면서 마치 기미년 3・1운동이 유관순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것처럼 방송했다. 그래서 올해 3・1절에도 이런 잘못된 방송이 나갈 우려가 있어서 지난 2월 9일 중앙총부의 종무원장과 교화관장, 그리고 33인유족회 라영의 회장이 MBC를 방문하여 작년의 왜곡보도에 대하여 강력히 항의하고 이에 대한 정정보도와 함께 재발방지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가장 정확하고 공정해야 할 방송에서조차 이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으니 일반 민중들이야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물론 MBC가 고의로 그런 방송을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중계방송하는 아나운서조차도 유관순의 만세운동에 대한 정확한 지식 없이 얻어들은 풍월을 가지고 방송에 임한데서 이런 착오가 빚어졌다고 생각된다. 바로 여기에서 3・1운동에 대한 국민적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학교에서 3・1운동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유관순의 유관단체에서 의도적으로 과대 선전하는데도 하나의 원인이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참고적으로 3・1운동 당시 유관순의 역할에 대해 간략히 기술해보기로 하겠다. 유관순은 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했는데,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담을 넘어 탑골공원에 가서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3월 5일 남대문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도 참여했다가 유관순과 학생들이 경무총감부로 붙잡혀 갔다. 그러나 외국 선교사들의 강력한 요구로 학생들은 풀려났다. 그 후 3월 10일을 기해 모든 학교에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유관순은 고향 병천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유관순은 병천, 목천, 천안, 안성, 진천, 청주 등지의 교회학교와 유림을 찾아다니며 4월 1일(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의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거사일 하루 전날 저녁 용두리 뒷산인 매봉산에 올라가 횃불을 높이 올리는 것을 신호로 인근 여러 산에서 불길이 솟아올랐고, 드디어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는 수천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그러자 일본 헌병들이 들이닥쳐 총격을 가해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한 19명이 죽고 유관순도 체포되었다. 결국 유관순은 재판에 회부되어 3년 징역 언도를 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 된 후에도 계속 항거하자 혹독한 형벌을 당해 건강이 악화되어 1920년 17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될 것은 유관순이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 후인 4월 1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유관순이 처음부터 3・1운동을 주도한 것처럼 와전됨으로써 특히 청소년들에게 3・1운동의 진실이 왜곡 전파되어 잘못 인식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청소년들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해서라도 학교에서 3・1운동에 대한 객관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3・1운동과 관련하여 와전・왜곡・과장・날조 등으로 인한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 허다하다. 이러한 일은 3・1운동이 극비리에 추진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도 일단의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자파이기주의에 치우쳐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곡필(曲筆)에 더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은 언제나 드러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사초(史草)를 기술함에 있어서 선열과 후세에 부끄러움이 없는 집필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계속) 글 지암 이창번 선도사 1934년 평안도 성천 출생 1975년 육군 소령으로 전역 1978년 천도교유지재단 사무국장 직을 시작으로 천도교종학대학원 원감, 천도교종학대학원 교수, 천도교당산교구장, 천도교동명포 도정, 상주선도사, 의창수도원장, 천도교중앙도서관장을 역임하였다. -
부산시교구 9월 월례수련 및 여성연합회 수련 강도회부산시교구(교구장 정신당 박차귀)는 9월 1일부터 7일까지 9월 월례수련 및 여성연합회 수련 강도회를 봉행하였다. 이번 수련은 무더위 속에서도 많은 교인들이 참석해 뜨거운 신앙심으로 공부에 전념하며 깊은 수행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월례수련은 부산시교구 수련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었으며, 주문 합송, 묵송 수련, 기도식,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특히 교인들은 한울을 모시는 마음으로 경전을 함께 합송하며 마음을 모으고, 묵송과 기도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통암 서종환 의창수도원장이 이번 수련에서 강의를 맡아 뜻깊은 수련의 깊이를 더했다. 폐강식은 9월 7일 시일식 후 마지막 수련에 이어 열렸으며,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고 그간의 수련 성과를 되새기며 신앙적 결의를 다졌다. 부산시교구는 “무더운 날씨에도 끝까지 함께해 주신 교인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번 수련을 통해 다져진 믿음이 일상에서 더욱 빛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진주소년회 105회 기념식’ 천도교 진주교구 후원으로 개최천도교 진주교구가 후원하고 ㈔동학소년회가 주최·주관한 진주소년회 105주년 기념식이 지난 2일 오전 진주시 중안동 진주교육지원청 앞마당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진주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 관계자, 천도교 교인, 일반 시민 등 40여 명이 참석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천도교 진주교구, 소년운동의 정신 되새겨 기념식은 ▲기념사 ▲동학소년회 선언문 낭독 ▲독립만세 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됐다. 정의적 천도교 진주교구장은 기념사에서 “오늘날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된 나라에서 원하는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그러나 이 자유는 평화를 열망한 선열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잊지 말고,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의적 교구장은 “천도교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을 가슴에 새기고, 어린이와 청소년이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며 세상을 밝히는 한울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진주소년회, 전국 소년운동의 뿌리 진주소년회는 1921년 5월 1일 진주에서 조직된 국내 최초의 소년운동 단체다. 이 단체는 전국 소년운동의 시작이자 어린이날 제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정신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며, 교육과 계몽 활동을 전개해왔다. 현재 ㈔동학소년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역사의식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진주시와 진주교육지원청 차원에서도 진주소년회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계승할 수 있는 행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기념식은 천도교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장과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리였으며, 동학소년회가 걸어온 100년의 발자취가 새로운 세대에게 이어지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사진제공 동학소년회 -
해월생태학교, 9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운영천도교 한울연대와 공익법인 동학소년회가 공동 주최하는 제5기 동소경주 해월생태학교가 오는 9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경북 경주시 원효로에서 열린다. 이번 프로그램은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라는 주제로 진행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 감수성을 키우고 지구살림의 가치를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양한 체험 중심의 프로그램 해월생태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 이상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며, 텃밭 가꾸기, 마당 숲 체험 등 자연 친화적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또한 ▲리사이클과 환경 실천 교육 ▲산행 및 숲 탐험 ▲벽화 그리기와 집 짓기 ▲시장에서 재료를 구해 직접 요리해 먹는 ‘생존 요리사’ 체험 등 다양한 지구살림 활동과 예술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참가 정원은 15~20명으로 소규모로 운영되며, 4주 과정 참가비는 4만원(재료비 포함)이다. 한 회차만 참가할 경우에는 1만 5천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참가비는 농협 계좌(351-1307-0206-63, 사단법인 동학소년회)로 납부 가능하다. 어린이 중심의 생태교육 주최 측은 “모든 활동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스스로 주관하고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자발적 학습과 실천을 강조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진행되며, 종료 시간은 당일 활동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담당자(사라쌤, ☎ 010-5635-8600)에게 연락하면 된다. 해월생태학교는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생명과 환경의 소중함을 체험하며, 공동체적 가치를 배우는 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포덕 166년 9월 14일 중앙대교당 시일설교 "개접과 파접"정암 주선원 동학민족통일회 의장은 해월 신사의 가르침을 토대로, 우주 만물에 내재한 한울님의 기운을 깨닫고,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참된 신앙임을 강조했다. 주선원 의장은 특히 ‘행시(行侍)’, 즉 능동적으로 한울님을 모시는 삶의 자세를 강조했다. “시천주는 단순한 예배나 형식적인 신앙 행위를 뜻하지 않는다”며, “내 안에 깃든 한울님의 기운을 일상에서 드러내는 행위야말로 시천주의 완성”이라고 설명했다. 주선원 의장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치 혼란과 인간 소외의 문제를 언급하며, “과거의 낡은 삶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모든 인간을 존귀하게 바라보는 마음을 회복하고, 나와 이웃, 그리고 세상을 한울님처럼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설교가 자기 성찰을 통한 내적 혁신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모든 이들이 진정한 도운 사람, 즉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설교를 마무리했다. 이번 설교는 전통 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기며, 천도교인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5일○ 1935년, 독일 뉘른베르크법 공포. 뉘른베르크법은 나치 독일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발표된 반유대주의법으로, 「독일인의 피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률」과 「국가시민법」의 총칭이다.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 법은 유대인의 권리를 박탈한 법률로 악명이 높다. 같은 해 11월에는 로마니(Romani people, 유목 생활을 하는 인도-아리아족), 흑인 등에 대해서도 규정이 확대되었다. ○ 1950년, 유엔군,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다. 6.25 전쟁이 발발한 후 우리 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났다. 그러나 전선은 고착화했고 북한군은 길어진 보급로 등으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는 역공을 펼칠 기회를 엿보았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보급로를 차단당한 북한군은 완전히 사기가 꺾였고, 국군과 연합군은 9.28 서울수복을 통해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몰아냈다. ○ 1959년,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 1894~1971) 미국 방문. 스탈린 사후 소련의 최고 지도자가 된 흐루쇼프는 1956년 소련 공산당 제20회 대회에서 스탈린을 강하게 비판했고, 이를 지켜본 서방 세계는 소련과의 평화 공존을 모색할 기회를 엿보았다. 마침내 1959년 흐루쇼프는 소련의 최고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군축 노선을 확정했다. 이로써 세계는 냉전에서 데탕트(Détente, 긴장 완화)의 시대로 돌아서게 된다. ○ 1977년, 고상돈(1950~1979),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복. 1977년 9월 15일 낮 12시 50분, 한국원정대 고상돈 대원은 “여기는 정상, 더 오를 데가 없다”며 해발 8,848m의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본부로 무전을 쳤다. 오전 5시 30분 제5 캠프를 출발한 지 7시간 20분 만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8번째 에베레스트 등정국이 되었으며, 고상돈 대원은 세계에서 56번째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산악인이 되었다. -
진심불염(眞心不染)진심불염(眞心不染) 1. 나와 한울이 둘이 아니요 성품과 마음이 둘이 아니요 2. 성인과 범인이 둘이 아니요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니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요 참된 마음은 물들지 않으니 천체를 스스로 쓰며 나를 자유로 쓰느니라 노랫말: 『의암성사법설』 「진심불염」 편에서 발췌 / 작곡: 김정희 노래: 조의선 / 대금: 김대곤 / 가야금: 이서영 / 장구: 방지원 / 음원 녹음․편집: 조든든 “1998년 12월 15일 천도교에 입교한 이래, 우리 음악 어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천덕송을 만드는 것이 나의 과제라 생각하면서도, 내 공부가 일천하고 여건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왔다. 2016년 8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늘 염두에 두었던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의 전교인이자 은사이신 혜원당 김춘성 선생님의 환갑을 앞두고, 평생을 천도교에 헌신하며 살아오셨고, 지금도 그러하신 선생님께 가장 좋은 보답은 바로 새 천덕송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었다. 그 한 달 동안 경전에서 노랫말을 발췌하고, 선율을 만들고, 반주를 붙이고, 연주자와 녹음 담당을 섭외하고, 몇 차례의 연습과 녹음, 믹싱, 마스터링까지 모두 해야 했다. 다행히 최고 수준의 연주자와 녹음 담당이 순조롭게 섭외되었고,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서, 선생님의 환갑 생신날, 인사동에서 뵙고 들려드릴 수 있었다. 이 곡은 내가 여태껏 연구한, 민요를 비롯한 우리 전통음악의 어법을 바탕으로 작곡하였다. 특히 이 곡, 「진심불염」은 박사 논문에서도 다룬 전남 영광군 「논매는소리-풍장소리」의 메기는소리를 모티브로 쓴 곡이다. 토속민요는 그 민족의 음악적 모국어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에 의해 거듭거듭 불리고 다듬어지며 전해 내려온, 집단지성이 이룩한 자생적 예술의 결정체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대표적 종교인 천도교의 천덕송이 이처럼 민요에 바탕을 두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_ 국악작곡가/민요연구가 김정희 김정희(영등포교구) 국악작곡가이자 민요연구가 부산예술대학 음악과 졸업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전문사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박사 졸업 전(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 ※ 유튜브를 통해서 위 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NnOgOBHwkE -
수심정기(守心正氣)수심정기(守心正氣) 1. 등불은 기름을 부어야 불빛이 환하고 거울은 수은을 칠해야 물건이 비치네 사람은 마음에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은 뒤에야 마음과 뜻이 신령한 것이니라 2. 저울에 물건이 없으면 언제나 평하고 구슬에 진흙이 없으면 언제나 빛나네 사람의 성령은 일월과도 같으니 영기가 중심에 이르면은 만사가 신통하네 3. 마음이 몸을 떠나지 않도록 지키고 희로애락을 과하게 하지 않으며 효제온공으로 갓난아이 보호하듯 마음을 언제나 기쁘게 하면 한울이 감응하네 한울이 감응하네 노랫말: 『해월신사법설』 「수심정기」 편에서 발췌 (3절 첫 두 줄은 『의암성사법설』 「위생보호장(衛生保護章)」에서 발췌) 작곡: 김정희 / 노래: 조의선 / 대금: 김대곤 / 가야금: 이서영 / 장구: 방지원 / 음원 녹음․편집: 조든든 “1998년 12월 15일 천도교에 입교한 이래, 우리 음악 어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천덕송을 만드는 것이 나의 과제라 생각하면서도, 내 공부가 일천하고 여건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왔다. 2016년 8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늘 염두에 두었던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의 전교인이자 은사이신 혜원당 김춘성 선생님의 환갑을 앞두고, 평생을 천도교에 헌신하며 살아오셨고, 지금도 그러하신 선생님께 가장 좋은 보답은 바로 새 천덕송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었다. 그 한 달 동안 경전에서 노랫말을 발췌하고, 선율을 만들고, 반주를 붙이고, 연주자와 녹음 담당을 섭외하고, 몇 차례의 연습과 녹음, 믹싱, 마스터링까지 모두 해야 했다. 다행히 최고 수준의 연주자와 녹음 담당이 순조롭게 섭외되었고,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서, 선생님의 환갑 생신날, 인사동에서 뵙고 들려드릴 수 있었다. 이 곡은 내가 여태껏 연구한, 민요를 비롯한 우리 전통음악의 어법을 바탕으로 작곡하였다. 토속민요는 그 민족의 음악적 모국어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에 의해 거듭거듭 불리고 다듬어지며 전해 내려온, 집단지성이 이룩한 자생적 예술의 결정체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대표적 종교인 천도교의 천덕송이 이처럼 민요에 바탕을 두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_ 국악작곡가/민요연구가 김정희 김정희(영등포교구) 국악작곡가이자 민요연구가 부산예술대학 음악과 졸업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전문사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박사 졸업 전(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 ※ 유튜브를 통해서 위 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y5Qg_t_DqE -
시문(詩文)시문(詩文) 1. 산 밖에 산이 보이고 물 밖에 물을 만나도다 물 밖에 물을 건너 산 밖에 산을 넘어 간신히 산을 넘어왔네 아, 들 넓은 곳에 이르니 대도가 있음을 깨달았네 안타까이 봄소식 기다려도 때가 아니면 오지 않네 2. 올 만한 절기가 이르면은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히 오네 봄바람 불어 일만 나무가 알아차리네 한 송이 두 송이 삼백예순 송이 온 세상이 꽃이로다 한 몸이 바로 꽃이면 온 집이 바로 봄이로다 아, 병 속에 신선술 있으니, 아, 만 사람을 살릴 만하네 부질없이 봉한 것 열지 말고 천 년 쓸 곳을 기다리라 노랫말: 『동경대전』 「시문(詩文)」에서 발췌 / 작곡: 김정희 노래: 조의선 / 대금: 김대곤 / 가야금: 이서영 / 양금: 김철진 / 장구: 방지원 / 음원 녹음․편집: 조든든 “1998년 12월 15일 천도교에 입교한 이래, 우리 음악 어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천덕송을 만드는 것이 나의 과제라 생각하면서도, 내 공부가 일천하고 여건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왔다. 2016년 8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늘 염두에 두었던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의 전교인이자 은사이신 혜원당 김춘성 선생님의 환갑을 앞두고, 평생을 천도교에 헌신하며 살아오셨고, 지금도 그러하신 선생님께 가장 좋은 보답은 바로 새 천덕송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었다. 그 한 달 동안 경전에서 노랫말을 발췌하고, 선율을 만들고, 반주를 붙이고, 연주자와 녹음 담당을 섭외하고, 몇 차례의 연습과 녹음, 믹싱, 마스터링까지 모두 해야 했다. 다행히 최고 수준의 연주자와 녹음 담당이 순조롭게 섭외되었고,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서, 선생님의 환갑 생신날, 인사동에서 뵙고 들려드릴 수 있었다. 이 곡은 내가 여태껏 연구한, 민요를 비롯한 우리 전통음악의 어법을 바탕으로 작곡하였다. 토속민요는 그 민족의 음악적 모국어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에 의해 거듭거듭 불리고 다듬어지며 전해 내려온, 집단지성이 이룩한 자생적 예술의 결정체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대표적 종교인 천도교의 천덕송이 이처럼 민요에 바탕을 두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_ 국악작곡가/민요연구가 김정희 김정희(영등포교구) 국악작곡가이자 민요연구가 부산예술대학 음악과 졸업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전문사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박사 졸업 전(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 ※ 유튜브를 통해서 위 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OAW-nOoJ6nM -
불연기연(不然其然)불연기연(不然其然) 1. 노래하기를 천고의 만물이여 각각 이룸 있고 형상이 있도다 아 아득한 일이여 헤아리기 어려움이여 아 근본이 없음이여 불연이 아니런가 2. 나면서부터 알아서 그러한가 자연히 화해서 그러한가 아 마음은 어두웁고 이치는 아득하여라 불연을 알지 못하고 기연을 믿는구나 3. 만물이 만물 되고 이치가 이치 된 그 큰일이 얼마나 먼 것이냐 아 이 세상 사람이여 어찌하여 앎이 없는고 아 만물의 불연이여 헤어서 밝히리라 4. 사시에 차례 있고 산 위에 물이 있고 갓난아기가 부모를 앎이여 먼 데를 견주어 생각하면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으나 조물자에 붙여보면 그러한 이치인저 노랫말: 『동경대전』 「불연기연」 편에서 발췌 / 작곡: 김정희 노래: 조의선 / 대금: 김대곤 / 가야금: 이서영 / 장구: 방지원 / 음원 녹음․편집: 조든든 “1998년 12월 15일 천도교에 입교한 이래, 우리 음악 어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천덕송을 만드는 것이 나의 과제라 생각하면서도, 내 공부가 일천하고 여건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왔다. 2016년 8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늘 염두에 두었던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의 전교인이자 은사이신 혜원당 김춘성 선생님의 환갑을 앞두고, 평생을 천도교에 헌신하며 살아오셨고, 지금도 그러하신 선생님께 가장 좋은 보답은 바로 새 천덕송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었다. 그 한 달 동안 경전에서 노랫말을 발췌하고, 선율을 만들고, 반주를 붙이고, 연주자와 녹음 담당을 섭외하고, 몇 차례의 연습과 녹음, 믹싱, 마스터링까지 모두 해야 했다. 다행히 최고 수준의 연주자와 녹음 담당이 순조롭게 섭외되었고,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서, 선생님의 환갑 생신날, 인사동에서 뵙고 들려드릴 수 있었다. 이 곡은 내가 여태껏 연구한, 민요를 비롯한 우리 전통음악의 어법을 바탕으로 작곡하였다. 토속민요는 그 민족의 음악적 모국어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에 의해 거듭거듭 불리고 다듬어지며 전해 내려온, 집단지성이 이룩한 자생적 예술의 결정체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대표적 종교인 천도교의 천덕송이 이처럼 민요에 바탕을 두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_ 국악작곡가/민요연구가 김정희 김정희(영등포교구) 국악작곡가이자 민요연구가 부산예술대학 음악과 졸업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전문사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박사 졸업 전(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 ※ 유튜브를 통해서 위 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FLuzWmJmTy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