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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전태흘 전 화악산수도원장 환원천도교중앙총부 전명운 교화관장의 부친, 전태흘 전 화악산수도원장이 포덕 166(2025)년 9월 20일 환원하였다. 향년 91세의 전태흘 전 화악산수도원장은 수도원이 생겨난 이래 11년 6개월간 수도원장으로서 갖은 살림을 도맡아온 화악산수도원의 살아 있는 역사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은수, 아들 전명운(천도교중앙총부 교화관장), 전명성, 전명훈, 며느리 최경미, 양선영, 이상분, 딸 전수경, 손 전현주, 전여울, 전형준, 전서현, 전형우, 박정훈, 박정은, 손서 김재환이 있다. 빈소는 광명 중앙대병원장례식장 특실이며, 입관 2025년 09월 21일 (일) 15시, 발인 2025년 09월 22일 (월) 07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웡 - 천도교 무봉공원이다. 부고장은 아래와 같다. https://wooribugo.com/funeral/view?urlsincode=eyJpZHgiOiIyNzE2ODYiLCJuZ3QiOjEsIm5hYyI6MSwibW5faWR4IjoiMjIyOTI5MCIsImdfcGgiOiIifQ==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20일○ 1875년, 운요호(雲揚號) 사건 발생 일본 군함 운요호가 조선의 개방을 강요하기 위해 강화도 연안에 불법으로 침입, 초지진(草芝鎭)과 영종진(永宗鎭)에서 조선 수비대와 교전을 벌였다. 이 사건은 조선의 주권을 침해한 무력 도발로, 이후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의 빌미가 되었으며, 일본의 침략적 대외정책을 드러낸 첫 사례로 기록된다. ○ 1978년, 고려대장경 초주본 59종 73권 발견 고려 초기 현종 재위 시기인 1011~1031년 사이에 제작된 두루마리 형태의 『대방광불화엄경경(大方廣佛華嚴經)』 주본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제작한 초조대장경 일부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고려 초기의 불교적 역량과 목판인쇄 기술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1990년 국보로 지정되어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1986년, 제10회 서울아시안게임 개막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하계 아시안게임이 10월 5일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국제 스포츠 대회였으며, 88서울올림픽의 리허설 성격이 짙었다. 대한민국은 금메달 93개로 종합 2위를 차지했고, 임춘애·양창훈 선수의 활약이 빛났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 중 유일하게 참가해 금메달 94개로 1위를 차지했으며, 아시아 체육사의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한 대회로 평가받는다. ○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튜브 기네스북 등재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 역대 최고 ‘좋아요’ 수를 기록하며 기네스북에 올랐다.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이 곡은 대중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고, 한국 대중문화(K-POP)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 2018년, 남북정상 백두산 방문 제3차 남북정상회담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을 함께 찾았다. 남북 정상이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오른 장면은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전해졌다. 역사적 현장에 함께한 이 순간은 남북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9일○ 1356년, 푸아티에 전투, 백년전쟁의 격전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 중 푸아티에 전투에서 맞붙었다. 영국의 흑태자 에드워드가 지휘한 군대는 프랑스 왕 장 2세가 이끄는 대군을 격파하고, 프랑스 왕을 포로로 잡았다. 이 전투는 백년전쟁의 향방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며, 유럽 중세사의 중요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 1893년, 뉴질랜드,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 보장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였다. 당시 여성 참정권 운동은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다. 뉴질랜드는 이로써 성평등과 민주주의 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선구적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 1932년, 한중 연합군, 쌍성보 전투에서 항일 투쟁 전개 만주 일대에서 항일 무장 독립군과 중국군이 연합하여 쌍성보 전투를 벌였다. 창춘과 하얼빈 사이에 위치한 쌍성보는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물산이 모이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는 일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한중 연합전선을 구축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세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한 한중 연합군은 2시간에 걸친 총공세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쌍성보는 혼전을 거듭하다 항공기까지 동원한 일본군에 넘어갔다. ○ 1976년, 신안 해저 유물 2,500여 점 인양 발표 문화재관리국은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무역선의 해저 유물 2,500여 점을 인양했다고 발표하였다. 청자와 동전, 향료 등 다양한 유물이 포함된 이 발견은 당시 고려가 활발히 국제 교역을 벌였음을 입증하며, 한국 해양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 1978년, 영해법 시행령 공포, 해양 주권 강화 대한민국 정부는 영해법 시행령을 공포하였다. 이는 우리나라가 국제 해양 질서 속에서 자국 영해를 명확히 규정하고 해양 주권을 강화한 조치였다. 이로써 어업권 보호와 해양 자원 관리에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
가을밤 물들일 ‘동학, 아름다운 사람들’ 콘서트 25일 열려천도교중앙총부는 오는 25일, ‘2025 인내천수운문화제’ 공연 행사로 ‘수운의 뜨락1-동학, 아름다운 사람들’(부제: 자유와 독립을 향한 동학혁명 이야기와 노래) 콘서트를 연다.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싱어송라이터 김현성의 새노래 ‘동학혁명의 노래’들을 처음 세상에 발표하는 공연 무대다. 김현성이 작사작곡한 노래들을 레퍼토리로 천도교중앙대교당 앞마당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공연은 1부 ‘민족시인의 노래’와 ‘독립군의 노래’, 2부 ‘동학, 아름다운 사람들’을 주제로 진행된다. 1부에서 김현성은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 등 민족시인들의 시에 노랫말을 붙인 ‘청포도’, ‘별 헤는 밤’, ‘ 나룻배와 행인’ 등에 이어 홍범도 장군의 활약상을 주제로 한 신곡 ‘나는 자랑스런 의병이에요’와 ‘홍범도의 묘비’ 등을 선보인다. 대표곡 ‘이등병의 편지’와 ‘술 한잔’(정호승 시, 김현성 곡)도 귀에 익은 멜로디로, 1부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2부 ‘동학 아름다운 사람들’ 공연은 모두 새로운 ‘동학의 노래’들로 채워진다. ‘아름드리 나무’, ‘해월 선생 내게 물으시네’, ‘탄 도유심급’(동경대전의 구절), ‘해월, 작별의 인사’, ‘세상에서 참 기쁜 일’, ‘주먹밥’(김남주 시, 김현성 곡) 등 여섯 곡 모두 김현성의 최신곡이다. 특별한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최인경 천도교중앙총부 사회문화관 관장은 ‘동학과 해월 최시형 이야기’로 함께 한다. 최인경 관장은 해월 최시형 선생의 직계 현손이다. 2부에서는 배우 김진휘의 ‘일하는 한울님’ 낭독 공연도 곁들여지며, 다함께 부르는 ‘별 헤는 밤’(윤동주 시, 김현성 곡)에 이어 기미독립선언문 일부를 노랫말 삼아 곡을 붙인 김현성 곡 ‘기미독립선언을 노래함’으로 문을 닫는다. (기미독립선언문을 노랫말 삼아 곡을 붙인 작곡가는 김현성이 처음이다.) 이 공연을 기획한 박성현PD는 지난 2일, 천도교중앙총부가 주최했던 ‘we, The K-우리 안의 위대함을 밝히는 시간’ 전시를 기획한 데에 이어 이번 공연을 선보이며 “1894년의 ‘동학 혁명’과 130년 뒤 2024년 겨울, ‘빛의 혁명’이 민족사의 자장 안에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노래 공연”이라면서 “동학에 푹 빠져 노래를 만든 시노래 장인이자 독보적인 뮤지션 김현성을 재발견하는 공연은 11월 포항시 투어를 비롯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싱어송라이터 김현성은 “해월 최시형 선생의 가르침이 깃든 동학에 대해 깊이 공부하면서 곡을 만드는 내내 ‘동학, 아름다운 사람들’ 공연이 지난 겨울 광장 시위의 불꽃을 꺼지지 않게 하는 기름이 되기를 소망했다.”고 말했다. 공연 일시는 2025년 9월 25일 목요일 19;00, 장소는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57 천도교중앙대교당 앞 특설무대이다. 공연 문의: 02-6488-6831, 010-9154-4112. 전석 무료. -
포덕 166(2025)년 7월 20일 부산시교구 박인준 교령 설교 "천도중흥 지금 이때"박인준 교령은 지난 7월 20일 부산시교구에서 열린 시일식 설교를 통해 천도교의 지난 역사와 현재의 과제를 깊이 성찰하며, 중흥의 비전을 제시했다. 박 교령은 설교에서 수운 최제우 대신사, 해월 신사, 의암 손병희 선생에 이르는 세 교조의 순도와 수많은 교도의 희생을 생생하게 조명하며 “천도교의 역사는 곧 우리 민족의 역사였다”고 말하며, 일제 강점기의 탄압과 남북 분단, 그리고 정치적 박해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이어온 천도교의 정신을 강조했다. 이어 박 교령은 오늘날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컬처의 중심지가 된 데에는 이러한 천도교의 정신적 뿌리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고 밝히며 “한류와 K-컬처의 근원에는 하늘님을 모시는 마음, 그리고 개벽을 향한 열망이 흐르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천도교가 다시 일어나야 할 개벽의 때”라고 역설했다. 또한 교도들에게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교단의 사명과 신앙의 본질을 잊지 말고, 한울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이번 설교를 통해 참석자들은 천도교의 깊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날의 도전에 맞서 중흥의 길을 함께 걸어갈 강한 신앙적 동기를 얻는 자리가 되었다. -
관동대지진 속 천도교의 구호와 진상 규명, 민족운동의 한 축을 이루다(지난 호에 이어) 천도교 도쿄종리원 박사직이 귀국할 때 동료의 송사에서 “대지진! 대지진!! 일본 수도의 대지진 당시에 말도 모르는 백의동포가 좌로도 우로도 피할 곳이 없이 가진 발광을 다부림녀서 혀를 빼어 물고 눈알이 꿰어지는 뭇(衆) 죽음을 당할 때에 선생의 환장된 가슴에 쓸쓸한 암흑 속에서 희미한 등불을 손에 들고 동포의 뼈를 한 토막, 두 토막 주워 모으며 돌아가던 그때가 이제에 생각하면 눈물이시겠지요”라고 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이재동포위문반에 참여한 바 있는 박사직의 반응이 아닐까 한다. - 동학지광 8호(1928.8)에 수록된 내용 (해설 성주현 상주선도사)- 동경당부는 포덕 68년 11월 1일에 기관지 「동학지광 (東學之光)」을 창간하여 포덕 74년 11월호까지 모두 18호를 발행하였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은 순식간에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재난이었다. 그러나 이 재난은 자연재해에 그치지 않고,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학살이라는 또 하나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조선인 청년들과 동포들은 극심한 공포 속에 흩어졌고, 이들을 지키고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천도교의 조직적 대응이 본격화되었다. 도쿄(東京)종리원의 보존과 위문반 임시 사무소 관동대지진 당시 도쿄(東京) 대부분의 건물이 붕괴와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천도교 도쿄(東京)종리원 건물은 기적적으로 화마를 피했다. 이 건물은 이후 조선인 구호와 학살 피해 조사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재조선동포위문반(罹災朝鮮同胞慰問班)’의 임시 사무소로 사용되었다. 위문반은 이곳에서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구호 활동을 전개했으며, 희생자들의 장례와 위령 의식을 주관했다.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의 결성과 활동 지진 직후 일본 전역에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며, 조선인 학살이 조직적으로 자행되었다. 이에 맞서 천도교 도쿄(東京)종리원과 종리원장 박사직을 중심으로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이 결성되었다. 천도교 청년회원 이근무, 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 YMCA 등도 함께하며 범동포적 연대가 형성되었다. 1970년에 발간된 『극웅필경』에는 당시 YMCA 총무 최승만의 회고가 실려 있다. 그는 천도교 청년회 박사직 등과 함께 ‘이재동포위문반’을 조직하고 조선인 학살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음을 기록했다. 이 조사는 1970년 3월 『신동아』에 「일본 관동진재시 우리 동포의 수난」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이후 『극웅필경』에는 재수록되었다. 위문반은 일본 당국의 방해와 탄압 속에서도 두 달간 피해 조사를 진행하며 진상 규명에 매진했다. 1923년 12월 25일 열린 ‘재동경조선인대회’에서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으며, 보고에 따르면 학살 희생자는 총 6,661명에 달했다. 또한 해외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虐殺(학살)’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을 제작해 배포했다. 1924년 9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는 관동대지진 1주기 추도식을 개최하여 희생자들을 기렸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추모 행사를 이어왔다. 2023년에는 100주기를 맞아 추모문화제를 열어 당시 사건과 천도교의 활동을 재조명했다. 조선 내 추모 활동과 일제의 통제 식민지 조선에서는 총독부의 언론 통제와 유학생에 대한 감시로 학살 소식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이는 4년 전 3·1운동과 같은 대규모 민족운동이 재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는 대규모 운동이 어려웠지만,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구제활동과 추도회가 이어졌다. 특히 포덕 65년(1924) 9월 1일, 신흥청년동맹과 서울청년회가 주도하여 중앙대교당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주기 추도회를 개최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동안 공식적으로 열린 유일한 대규모 추도회였다. 한편, 도쿄청년회는 일본 내에서 해마다 추도회를 열어 학살의 기억을 이어갔다. 포덕 65년(1924) 9월 13일, 흑우회·기독교청년회·조선노동동맹회 등과 연합으로 1주기 추도회를 열었고, 포덕 66년(1925)에는 도쿄종리원에서 2주기 추도회를 개최하며 조난동포들을 기렸다. 역사적 의의와 오늘의 계승 관동대지진 속에서 천도교가 보여준 활동은 단순한 구호를 넘어 민족운동의 한 축이었다. 천도교는 재난 속에서 조선인의 생명을 지키고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행동했으며, 일본 내 조선인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일본 내 조선인 인권운동과 해외 독립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천도교의 이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재난과 인권 문제에 대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 당시 천도교가 보여준 연대와 실천의 정신은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세대를 넘어 계승되어야 할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
[칼럼] 천도교의 사후관에 문제를 제기한다필자가 근무하는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에는 남모르는, 나만 아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올해가 동학혁명 131주년이니까 기념관이 건립된 시간이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공사 총책으로 수시로 현장에 오가 가는 신분이었다. 만약 밤에 비가 오기라도 하면 한밤중에 재빨리 와야 했는데, 건물 지붕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아 조심 조심 지붕에 올라가 안전한지 살펴보다가 그만 가파른 지붕 경사 2층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아찔한 순간, 영락없이 중상 아니면 사망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울님’하고 소리쳐 불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뒤에서 미끄러지는 나를 꽉 잡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서는 천천히 기어 지붕 정상에 올라 한숨을 쉬고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주위를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도 없었다. 기념관 개관 후 나는 책자를 3권 출간하였다. 그 집필시간이 기념관 퇴근 시간부터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으니, 기념관 문 닫고 그곳에서 집필하는 것이 최상이었다. 새벽 1~2시경 전시관에 누군가 꼭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었다. 나는 “스승님, 선열님 오셨습니까?”하고 인사를 여쭙곤 하였다. 물론 모습과 흔적은 볼 수가 없었다. 또 기념관 전시실 문이 자동문이라 누군가가 가까이 와야 열리고 닫힌다. 그런데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난 뒤 자동문 혼자 열리고 닫히는 상황이 가끔 발생한다. 나는 일어서 문 앞으로 나가 두 손을 합장하고 “한울님 오셨습니까?”하고 인사를 드린다. 물론 흔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까 수운 대신사 경전에 한울님 하신 말씀 “귀신도 나이니라” 즉 귀신도 한울님 이라는 글귀가 머리를 스친다. 그럼 나는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를 속으로, 입으로 외운다. 천도교에서는 사후관 즉 개체영혼설을 부정한다. 그래서 일부 종교학자들은 천도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종교성립의 주요 내용 중에, 첫째 신의 존재, 둘째 교주의 존재, 셋째 경전의 존재, 넷째 교인의 존재, 다섯째 사후관의 존재 정도가 있어서 한다. 천도교는 사후관의 존재가 확실하지 않다. 물론 향아설위와 성령출세설이 있지만, 명확한 개체 영혼설이라 말할 수 없다. 천도교가 과거의 영광 즉 우리나라에서 신도수가 제일 많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순수 종교적 신앙에서 교인수가 많았던 것이 아니라, 사회개혁운동 즉 혁명운동과 독립운동 등 대중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상황이었다. 현재 정당단체나 사회단체처럼 그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고 함께 동참하게 하는 교정일치의 선두에서 대중들을 이끌어갔던 것이다. 현재는 솔직히 말해 천도교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환원하는 사람들에 비해 새로 입교하는 사람들이 적으니 세월이 지남에 따라 현저히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천도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기독교나 불교 등과 같이 현상유지라도 할 것이다. 그 하나는 사후관을 확실히 정립해야 한다. 또 하나는 사회개혁 즉 통일운동, 환경운동 등 대중을 선도하는 최전선에 나서야 한다. 현재는 둘 다 미미하기 그지없다. 나는 오랜 동학 천도교 수행한 사람으로서 인간의 사후관을 인정한다. 천도교에서 말하는 성령출세라는 다소 철학적인 사후관이 아니라, 타 종교처럼 개체 사후관을 말한다. 그리고 만약 귀신이 내 앞에 나타나도 하나도 두렵거나 무섭지 않다. 귀신(보이지 않는 한울님을 뜻함) 또한 한울님이라는 수운 대신사님 경전을 생각하면 귀신이 다가오더라도 “모시고 반갑습니다. 한울님..”하면 그 귀신들도 나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글 이윤영(천도교직접도훈, 동학혁명기념관장, 2차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국민연대 공동대표) *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신인간 창간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 콜로퀴엄 개막천도교 기관지이자 한국 근대 사상의 중요한 지평을 열어온 월간 <신인간>이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대규모 학술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오는 2026년 4월 창간 100주년을 맞이해 새 시대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마련된 이번 프로젝트는, 동학 사상과 현대 철학, 그리고 미래 인류의 전망을 아우르는 집단 사유의 장으로 기획됐다. 이번 특별기획의 첫 걸음은 “포스트휴먼을 다시 묻다”라는 주제의 콜로퀴엄이다. 이는 ‘신인간 선언 2’를 준비하기 위한 사전 스터디로서, 2024년 9월부터 11월까지 격주 목요일 저녁 7시, 온라인(Zoom)에서 5회에 걸쳐 진행된다. 포스트휴먼 시대, 새로운 존재 선언 21세기 인류는 인간 중심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와 ‘포스트지구(Post-Earth)’라는 새로운 지평에 직면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붕괴, 인공지능의 감정 데이터화, 탈경계적 존재의 등장,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세계 질서 재편 등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 것인가” ‘신인간 선언 2’는 160년 전 동학 창도와 다시개벽 선언의 정신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다양한 포스트휴머니즘 선언들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문명 선언이다. 근대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넘어서는 존재와 문명의 전환을 목표로 하며, 이번 콜로퀴엄은 그 철학적 토대를 집단적으로 모색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 프로그램 – <신인간 선언 21> 심포지엄 12월 11일에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콜로퀴엄을 통해 축적된 논의들을 종합하고, ‘신인간 선언 2’의 방향성을 본격적으로 제시한다. 이후 12월부터 3개월간 선언문 작성 과정을 거쳐, 2026년 4월 창간 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최종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 1926년 창간호에서 강우가 발표했던 「신인간의 선언」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며, 다음 100년의 인류와 문명을 향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게 된다. 콜로퀴엄의 의미 ‘신인간’은 단순히 neo-humanity(새로운 인간)를 넘어, 새 세상, 새 사회, 새 문화, 새 윤리, 새 시대, 새 문명 등 포괄적인 비전을 담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강좌가 아니라, 철학·영성·생태·젠더·기술·공동체 등 다각적 시각을 통해 집단적으로 사유하고 토론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2026년 발표될 <신인간 선언 21>의 초석을 다질 예정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신인간사 – 창간/설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준),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 동학학당이 공동주최하며, ‘포스트휴먼 시대’의 문명적 전환을 모색하며, 100년 역사의 <신인간>이 다음 100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존재 선언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문의: 010-5207-6487 (박길수 신인간 주간) -
중앙대교당, 안전성 점검 위한 작업공간 조성공사 진행 중천도교 중앙대교당이 천정 내부 구조체의 안전성 점검을 위해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지난 9월 18일 오후 2시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향후 보수공사에 앞서 안전성 점검을 위한 비계 설치 및 점검 방안이 논의되었다. 이날 회의에는 서울시 국가유산위원회 건축분과 위원, 설계사무소, 구조기술사, 종로구청 담당자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회의 후 위원들은 직접 전장에 올라가 천정 내부 구조를 점검하며 안전 상태를 면밀히 살폈다. 또한 향후 보수공사 추진 계획과 점검 결과를 반영한 보완 대책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중앙대교당은 1918년 공사를 시작해 1921년에 완공된 건축물로, 당시 교인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공사비를 충당했다. 공사 후 남은 일부 성금은 3.1운동 및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되어 역사적 의미가 크다. 1978년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매주 시일식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의식이 봉행되고 있다. 이번 점검과 보수공사를 통해 중앙대교당은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며, 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8일○ 1866년,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침범으로 병인양요 발발. 프랑스군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를 침범했으며, 이는 서구 열강의 무력 개입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이 되었다. 병인양요 당시 조선군은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에서 결사 항전을 펼쳤으나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에게 고전하였다. 그러나 끝내 프랑스군이 조선을 장악하지 못하고 물러나면서, 조선은 ‘서양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자부심을 얻는 동시에 서구와의 불가피한 충돌을 예고하게 되었다. ○ 1894년,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인 교동소학교 개교. 서울 종로구에 문을 연 교동소학교는 서구식 학제를 도입한 최초의 공립 초등교육기관으로, 아동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과거 서당이나 서원에서 한문 위주로 교육받던 것과 달리, 산술·지리·역사 등 근대 교과과정을 운영하며 시대 변화에 부응했다. 교동소학교는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공립학교 제도의 모델이 되었고, 한국 근대 교육 발전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 1931년, 일본, 만주사변을 일으키다. 중국의 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일본 관동군이 남만주철도 선로 폭발 사건을 조작해 군사 행동을 개시한 것이 만주사변이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해 단기간에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 이 사건은 국제연맹에서 규탄을 받았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탈퇴함으로써 국제 사회와 대립각을 세웠고, 결국 아시아와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전초가 되었다. ○ 1953년, 빨치산 이현상, 지리산에서 사살되다. 6.25 전쟁 전후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하며 ‘빨치산의 총사령관’으로 불렸던 이현상이 이날 토벌 작전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해방 이후 좌익 무장 세력을 이끌며 농민 운동과 게릴라전을 주도했지만, 국가의 집중적인 토벌 작전에 결국 쓰러졌다. 이현상의 죽음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이념 대립과 전쟁의 상흔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 1973년, 동독과 서독, 유엔에 동시 가입. 냉전 체제 속 분단국가로 존재하던 동·서독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각기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독일 분단의 현실을 국제적으로 확인시켜 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양국 간 교류와 협력의 물꼬가 트이면서 훗날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의 토대를 닦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