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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166년 종의원 1차 예결산소위원회 개최포덕 166년(2025) 10월 15일 오후 2시, 수운회관 9층 천도교중앙총부 회의실에서 종의원 1차 예결산소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정정숙 의장을 비롯하여 변종제 부의장, 김재훈 사무장, 김금자, 유원진, 이미애, 정해진, 차상근 종의원 등 8명이 참석했다. 회의는 청수 봉전과 심고, 주문 3회 병송의 의절에 따라 진행되었다. 정정숙 의장은 인사말에서 “올해 구성된 예결산소위원회의 첫 회의인 만큼 상견례와 함께 내년도 예산 구조 전반을 미리 점검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히며, 다가오는 12월 예산총회와 2월 결산총회에 앞서 소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더불어 “종무원과 유지재단에서 11월 말 제출하는 예산안은 충분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며, 소위원회 논의를 토대로 종단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변종제 부의장의 보고가 있었다. 보고 자료에는 금년도 종의원 회무 진행 상황과 특별회계 사업 집행 현황 등이 포함되었다. 특히 특별회계 사업비가 7억 원 이상으로 일반회계 규모를 넘어서는 점이 주목되었다. 정정숙 의장은 “특별회계 사업이 대부분 하반기에 집중되어 집행 부담이 크다”며 집행 구조의 개선과 효율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회의에서는 인내천 수운문화제, 인내천 서예 모심전, 지도자 캐릭터 홍보 사업, 경전 앱 개발 사업 등 특별회계 주요 사업이 상세히 검토되었다. 인내천 수운문화제는 서울과 포항 두 지역에서 추진되며 총 1억 2,200만 원의 국고보조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공연 기획과 무대 설치, 영상 제작 등 다양한 항목이 포함된 만큼 집행 과정의 투명성과 예산 구조의 명확한 공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경전 앱 개발 사업은 천도교 경전의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사업으로 평가되었다. 다만 외부 인력 중심으로 구성된 개발 구조에 대하여, 교단 내 IT 전문가의 참여 가능성 등 운영 방식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또한 독거노인 대상 물품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인내천 모심과 나눔’ 사업에 대해서는, 향후 천도교인을 위한 나눔 체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안되었다. 정정숙 의장은 특별회계 집행과 관련하여 “견적서와 선정 과정이 보다 투명하게 제시되어야 심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며 향후 제출 자료에는 업체별 견적 비교표와 선정 사유를 명확히 정리할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내년도 예산안 제출 이전에 추가 자료 요청이 필요한 항목은 소위원회에서 정리하여 종무원에 전달하기로 하였다. 소위원회는 종무위원회의 일정에 따라 11월 말까지 제출될 내년도 사업계획안과 예산안을 검토한 뒤, 12월 초 2차 회의를 열어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정숙 의장은 “예결산소위원회는 종단의 재정 운용을 점검하는 동시에 인내천 정신을 따라 사업 방향을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며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했다. -
포덕 166년 종의원 2차 예결산소위원회 열려천도교 종의원은 포덕 166년 12월 3일(수) 오후 2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포덕 166년 종의원 2차 예결산소위원회’를 개최하고 내년도 주요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는 김재훈 사무장이 집례한 가운데 개회–청수봉전–심고–주문 3회 병송–인사말씀–보고–안건심의–심고–폐회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요 안건이 상정되어 검토됐다. ▲1호 안건 : 포덕 167년도 중앙총부 사업계획안 및 예산안 심의 ▲ 2호 안건 : 포덕 167년도 유지재단 사업계획안 및 예산안 심의 ▲ 3호 안건 : 포덕 167년도 특별회계 사업계획안 및 예산안 심의 ▲ 4호 안건 : 기타 종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6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올해 주요 업무 보고가 이어졌다. ▲1·2차 운영위원회 개최 ▲예결산소위원회 1·2차 회의 진행 ▲포덕 167년도 예산안 제출 ▲목적 성금 및 특별회계 합의 ▲신인간 100주년 기념광고 검토 ▲현도기념일 봉행 등 주요 업무를 수행 등을 보고했다. 천도교 종의원은 이번 심의를 통해 내년도 사업 추진의 기틀을 마련하고, 중앙총부와 유지재단, 특별회계 전반에 대한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 확보를 다짐했다. -
신숙 선생 58주기 추도식 봉행지난 11월 22일 서울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인근 묘역에서 독립운동가 신숙(申淑, 1888~1966) 선생 58주기 추도식이 봉행됐다. 이날 추도식에는 유족과 천도교 관계자, 광복회 및 독립운동 관련 단체 후손 등 2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순국정신을 기렸다. 지난 해보다 조화가 늘어난 모습은 오랜 세월 잊혀져온 독립운동가의 삶을 사회가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참석자들은 한 사람의 이름 앞에서 묵상하며, 소리 없이 시대를 건너온 신념의 무게를 되새겼다. 독립운동 전선의 거의 모든 길을 걸은 투사 신숙 선생의 생애는 한 문장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치열한 여정이었다. 1903년 동학(천도교)에 입교한 뒤, 교육·조직활동·무장투쟁 등 독립운동의 전선 곳곳에 몸을 던졌다. 서울 문창학교 설립으로 민족교육의 불씨를 지폈고,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인쇄 및 배포에 참여했다. 이후 만주와 상해로 이어지는 망명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하고, 한국독립당 창립에 동참했다. 특히 한국독립군 참모장으로 독립전쟁 전략 수립의 중추 역할을 맡았으며, 해방 직전에는 재만동지회를 조직해 한인 교포 보호와 귀국 지원에 힘썼다. 선생의 독립운동은 내내 '사람을 위한 독립’이라는 분명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그 공로를 국가가 뒤늦게 증명한 것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1963년)이다. “스스로 등불이 되고자 했던 영혼” 추도식은 선생의 증손녀이자 서울교육대학교 재학 중인 신민재 씨의 생애 소개로 시작됐다. 이어 이희정 북부보훈지청장은 추모사에서 “신숙 선생의 독립은 사상이나 전략 이전에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기렸다. 또한 천도교를 대표해 참석한 광복회 전 이사 이승봉 선생은 “선생의 걸음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고자 했던 한 영혼의 기록” 이라며 숭고한 뜻을 되새겼다. 유족대표 신현종 선생은 “후손들의 삶이 선친의 길을 잇는 작은 답례가 되길 바란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역사 앞에 선 현재의 발걸음 이날 추도식에는 천도교 측에서 노태구 전 동민회 상임의장, 박남문 종의원, 이재선 종무위원 등이 함께했으며, 광복회 관계자 및 여러 지회장들도 자리했다. 참석자들의 단단한 연대는 독립운동의 정신이 오늘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증언했다. 추도식이 끝난 뒤에도 묘역에는 한동안 발걸음이 이어졌다. “선생의 삶은 오늘 우리의 자유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라는 한 참석자의 말처럼, 그 가르침은 오늘의 책임을 묻고 있었다. 잊지 않는 일, 그것이 추모의 시작 독립운동을 기억한다는 것은 거창한 행위가 아닐지 모른다.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그 삶을 통해 오늘을 성찰하는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최대의 책임이다. 11월의 찬 공기 속에서 신숙 선생의 이름은 다시금 우리에게 말했다. “자유는 누군가의 삶을 건 발걸음 위에 서 있다.” -
경상도 여성연합회, 울산 여시 바윗골 성지순례 진행경상도 여성연합회(회장: 덕순당 강봉지)는 포덕 166년(2025) 11월 15일(토), 경상도 관내 6개 포(남정포, 남진포, 도원포, 동원포, 순원포, 순의포)로 구성된 여성회원 29명과 함께 천도교 제1세 교조이신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이 을묘천서를 받으신 울산 여시 바윗골을 방문했다. 이곳은 정신문화의 발상지이자 민족종교 사상의 원천이며, 천도교 포태지로서 대표적 유적지로 손꼽히는 장소이다. 남해, 삼천포, 사천, 하동, 영산, 경주, 부산 지역에서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모여든 여성회원들은 피곤도 잊은 채 반가운 얼굴로 오전 10시경 동학관에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이어 남정포 이암 정의필 도정이 ‘수운 최제우 유허지 간략 약사’를 영상으로 설명했으며, 시청 후 11시에 기도식을 마치고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효신당 하수희 총무의 집례로 심고, 주문 3회 병송, 사계명 낭독(재무: 선수당 배영선), 여성회 강령 낭독(부회장: 시정당 문춘옥)이 이어졌다. 덕순당 강봉지 회장은 인사말에서 “회원님들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스승님의 발자취를 더듬어보자는 취지로, 대신사님께서 을묘천서를 받으신 이 뜻깊은 곳에서 모이게 되어 더욱 귀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자료를 준비해주신 이암 정의필 남정포 도정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앉아서 주문 공부도 중요하지만 스승님들께서 도를 펴기 위해 전국 팔도를 다니며 고생하신 일을 생각하면, 우리가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천도교를 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확고하게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신당 박차귀 교구장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박 교구장은 모임을 준비한 강봉지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24년 전 고령 가야대학 강당에서 경상도 연원회 총회가 열렸을 때 남성들만 정식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었고 여성들은 옵서버 자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날 회의에서 당위성을 말씀드려 의안으로 채택되었고, 포덕 142년 2월 10일 고성교구에서 묵암 선생님 기도일에 경상도 연원회 여성회가 정식 발족했습니다. 저는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15년을 재임하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여성회 워크숍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고, 여성 지도자를 양성해야 천도교가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1년에 두 번 이상 1박 2일 모임을 진행하는 등 임원과 회원들이 한마음으로 열정적으로 노력해 온 결과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과거를 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께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분발해주시고 애교심(愛敎心)과 배려심으로 교단과 연원회 발전에 정성과 성력을 다해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연혁 보고는 옥숙당 황서윤 회원이, 감사보고는 정순당 강정옥 감사가 “무탈하게 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천덕송 합창 ‘우리의 길’을 다 함께 힘차게 부르며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박차귀 부산시교구장은 울산시교구 박암 이용수 종의원이 점심 식사 장소를 알선해준 데 대한 고마움을 전하며, 현지에서 참석한 회원들과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십리대숲을 산책하며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회원들은 서로 아쉬움을 나누며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라는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서둘러 귀향길에 올랐다. 사진 및 자료 제공 정신당 박차귀 부산시교구장 -
[칼럼] 세계화를 위한 천도교 문화예술 만들기(2)지난 10월 칼럼에서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을 맞아 포덕168(2027)년에는 천도교 세계화를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앞으로는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갖기 위해서는 문화예술로 포덕 교화방향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단 차원에서 준비해야 할 내용들로 11월 칼럼을 대신하겠다. 1. 천도교 글로벌 TFT 조직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열광하는 전 세계 젊은이들을 향해 K-donghak이 대한민국의 정신(K-spirit)이라는 것을 전세계에 알릴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차원의 천도교 글로벌 TFT를 조직하여 분야별로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먼저 10여개의 TFT를 조직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능력있는 교인들이 많이 있다. 사람이 없다고 하지 말고 인재를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책임을 맡기자. 교인과 일반 전문가를 섞어서 TFT를 만들면 더 효과적이다. 아래에는 천도교 세계화를 위한 나름대로 필요한 조직들을 제안해 본다. <TFT분야> ① 경전 외국어 번역분야 :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교리와 외국어, 한국어에 능통한 사람들로 구성, 번역은 전문 번역사에게 의뢰 ② 교리연구분야 : 동학 천도교 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와 사회, 전 지구적 문제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교리를 전달할 수 있는 연구진들로 구성 ③ AI 분야 : 젊은이들은 AI를 많이 활용한다. AI에게 동학 천도교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잘못된 내용을 교정해 주고 새로운 내용을 업데이트해 줄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 외국어 업데이트 필수 ④ 예술분야 (그림) : 동학 천도교를 알릴 수 있는 역사화, 기록화 또는 경전 내용의 상상화, 창작화 등이 필요, 전문 작가를 섭외하여 회화, 조각, 공예, 서예 등의 미술작품을 제작하여 용담정, 봉황각, 중앙대교당, 울산여시바윗골, 대신사생가 등에 전시하여 방문객들에게 작품으로 울림을 줄 수 있도록 전시 ⑤ 예술분야 (음악) :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오케스트라, 앙상블 연주 가능한 곡으로 천덕송, 송가 편곡 및 창작, 음악제를 개최하여 편곡, 창작곡 발표, 발표시 홍보에 적합한 전문 성악가, 가수 초청 ⑥ 예술분야 (뮤지컬, 연극) : 뮤지컬에 관심 있는 교인과 전문가들로 구성, 창작극, 혹은 기존의 뮤지컬 연장, 순회공연 방법도 좋음. ⑦ 예술분야 (영화,드라마,다큐) : 영상제작 기술 전문가와 교리 교사에 해박한 교인들로 구성 ⑧ 홍보분야(SNS, 유튜브, 홈페이지 등) : 동학 천도교를 알리기 위한 어린이, 학생, 대학생층과 성인층으로 나누어 구성, 신인간사가 주도적으로 홍보 역할 담당 ⑨ 문화분야 : 천도교 인사, 제례, 상례, 혼례, 기도식, 수련 문화 등을 정리하고, 천도교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과 관심있는 사람들로 구성 ⑩ 대외협력 : 기업, 정부, 지자체 등에서 기부금을 모을 수 있는 대외관계가 원만하고 발이 넓은 사람들로 구성 ⑪ 국제부 : 국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조직 2. 홍보와 국제네트워크 구축 아무리 좋은 보석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동학 천도교의 보석같은 진리를 세상에 알리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홍보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오늘날은 대한민국의 소식을 3초 이내에 전 세계에서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IT강국이다. 우리는 IT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 동학 천도교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을 많이 이용한다. 그리고 중년층은 페이스북, 트위스터 등을 많이 활용하며 유튜브는 어린아이부터 장년층까지 두루두루 사용하고 있다. 너튜브로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네트워크 시스템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얼마 전에 결혼해서 프랑스에 거주하는 젊은 한국인이 천도교를 찾아와서 입교하고 젊은 층을 향해서 천도교를 알리겠다는 포부를 말하였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현재는 프랑스에서 유튜브를 통해서 천덕송 등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편곡한 천덕송과 함께 유튜브에 소개하였다. 우리의 천덕송이 편곡되어 외국어로 노래되는 것을 들으니 그 얼마나 장엄한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요즈음은 음악을 편곡해 주는 앱뿐만 아니라 AI를 통해서 작사 작곡까지 해주는 세상이니 컴퓨터를 조금만 더 잘 알고 다루게 된다면 그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해외에 있는 천도교 교당은 일본이 유일하다. 미국에는 오랫동안 매년 기념일이면 교포신문에 축하광고를 내었던 원로교인이 한분 계셨는데 그 분이 환원하셨다. 그 뒤를 이어 누가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의 또 다른 곳으로 젊은 층의 교인 한 분이 이민 가서 살고 있다. 호주에도 가족이 모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교인이 있다. 프랑스에도 앞에서 언급했던 젊은 교인이 활동중이다. 쿠바에는 독립운동하셨던 임천택 교인의 후손이 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벌써 일본, 미국, 프랑스, 쿠바 등에는 우리가 조금만 더 정성을 드린다면 연결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교인 외에도 전국에 있는 교인들 대상으로 해외에 있는 친, 인척, 지인들의 근황을 조사한다면 해외에 거주하는 교인들이 더 나올 수도 있다. 이참에 해외 거주 교인 조사를 실시하여 그분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자. 그분들이 주축이 되어 국내의 우리와 손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나간다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으로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국제적으로 환경단체, 평화단체, 인권단체, 생명단체 등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네트워크를 구축하자. 우리에게는 스승님들께서 가르쳐 주신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있지 아니한가! 그들과 국제학술심포지엄을 통해서 연결되어도 좋고, 온라인을 통한 학술모임을 하여도 좋다. 우리의 진리가 담긴 책들을 해외에 보내는 작업을 하여도 좋다. 특히, 국제 환경실천모임과 연결지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바야흐로 포덕 교화는 문화예술과 인터넷망을 통하여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세는 흐르고 있다. 2027년(포덕168년)에는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을 맞아 천도교 세계화를 위해서 큰 항해가 시작되기를 두손 모아 간절히 심고 드린다. “꿈은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 ” 글, 정정숙(종의원 의장) -
대구 감영과 관덕당동학이라는 가르침이 맹위를 떨치며 퍼져간다는 소문이 조선의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선전관(宣傳官)을 임명하고 무예별감 두 사람과 군관 한 사람, 그리고 하인 한 사람을 딸려 동학의 진원지인 경주로 급파했다. 『고종실록(高宗實錄)』에 의하면, 선전관에 정운구(鄭雲龜)를 선임하고, 수행원에는 무예별감(武藝別監) 양유풍(梁有豊)과 장한익(張漢翼), 좌변포도군관(左邊捕盜軍官) 이은식(李殷植) 등이 임명되었다. 이 밖에 정운구의 종자인 고영준(高英晙)까지 합하여, 일행은 모두 다섯 명이 된다. 宣傳官鄭雲龜書啓 臣於十一月十二日 敬奉傳敎 率武藝別監梁有豊張漢翼 左邊捕盜廳軍官李 殷植等 以慶尙道慶州等地 東學魁首詳探捉上次 忙出城外 藏蹤秘跡 星夜馳往 선전관 정운구가 서계를 올리니다. 신은 11월 12일에 전교를 받들어 무예별감 양유풍 장한익 좌 변포도청군관 이은식 등을 인솔하여 경상도 경주 등지에서 동학 괴수를 자세히 탐지하여 체포 하고자 성문을 나서 남모르게 밤길을 도와 달려왔습니다. - 『고종실록(高宗實錄)』 원년 12월 24일 임진(元年 十二月 二十日 壬辰) 그날로 서울에서 출발하여, 남대문을 나선 일행은 어명을 개봉하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소임을 확인한 다음 며칠을 머문 뒤, 11월 22일 길을 떠나 밤낮으로 목적지인 경주로 향하였다. 문경 새재를 넘어서면서 이들은 동학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을 탐문하기 시작하였다. 새재를 넘어 영남지방에 이르자 각 주(州) 군(郡)마다 밤이면 동학의 주문이 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동학이 심각하게 많이 퍼졌음을 이들은 실감하게 된다. 이들은 경주부에 들어가 명을 받고 왔음을 신고하고 경주부의 지원을 받아 경주와 용담 일원의 시장이나 절간 등을 중심으로 탐문을 하였다. 탐문이 끝난 12월 9일 양유풍과 종자 고영준을 직접 용담에 보내 상황을 조사토록 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들은 용담으로 들어가는 동구 근처에 있는 장(張) 모라는 사람을 통해 용담정으로 들어가 대신사를 만나 입도하러 왔다고 거짓을 말하고는 접근을 하며, 내방하는 사람들의 동정과 대신사의 언동, 용담의 지형 등을 자세히 살핀 다음, 피곤하다는 핑계를 꾸며대고는 다시 용담을 빠져나온다. 12월 10일 새벽 급습하여 용담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여 경주부 감옥에 넣는다. 다음 날에 신상 파기를 한 이후 대신사를 비롯한 몇 사람을 서울로 압송하였다. 서울로 올라가는데, 문경 새재에 동학도들이 집결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길을 돌려 상주 화령을 거쳐 보은으로 압송 길을 다시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과천에 이르러 죄인을 서울로 압송할 것을 조정에 품의하니, 당시 철종(哲宗)이 승하를 하였기에, 국상(國喪)이 났으니 죄인을 본부 감영으로 다시 돌려보내라는 명을 받고는 본부 감영이 있는 대구(大邱)로 발길을 돌린다. 이리하여 추운 겨울 서울로 압송되던 대신사 는 다시 길을 돌려 대구를 향하여 압송되었다. 대신사 일행은 다시 길을 돌려 충주를 지나 새재를 넘어 초곡(草谷)을 지나 유곡리(幽谷里)에서 과세를 하고 대구에 이르러 감영에 수감되었다. 당시 대구 감영에서의 대신사 계신 상황과 문초 과정 등이 『도원기서』에 실려 있다 대구 감사가 주관하여 대신사를 문초하고, 사형이라는 엄형을 내리고자, 당시 막 등극한 어린 임금 고종(高宗)을 대신하여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던 조대비(趙大妃)에게 장계(狀啓)를 올려 대신사를 사형 집행하였다. 달성공원에서 멀지 않은 반월당사거리 현대백화점과 그 맞은편 일대가 대신사께서 참형을 당하신 관덕당(觀德堂)이 있던 곳이다. 현대백화점 앞에 대구시교구가 중심이 되어 세운 대신사 순도비가 자리하고 있고, 길 건너편에는 천주교 순교 기념관이 서 있다. 이 지역은 당시 아미산이라고 불렀는데, 잡범들은 이곳 아미산에서 처형을 했다. 천주교 신도들은 잡범으로 분류되어 아미산에서 사형을 당하였기 때문에 천주교 순교 기념관이 이곳에 들어선 것이다. 현대백화점 뒤에서 종로초등학교에 이르는 넓은 부지가 대구 감영이 있던 곳이고, 대신사께서는 참형 직전까지 그곳에 구금되어 계셨다. 종로초등학교 마당에 ‘최제우 나무’라고 명명된 큰 회화나무가 서 있는데, 수령이 400여 년에 이른다. 대신사께서 감옥에 있으면서 내다본 나무라고 하여 이 나무를 그렇게 명명한 것이다. 그곳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달성공원에는 1964년 3월 31일 대신사 순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신사순도백주년기념동상건립위원회’가 주최가 되어 건립한 대신사 동상이 있다. 함께 돌아보면 어떨까 한다. 대신사께서 대구 감영에 갇혀 있을 때 해월 신사께서 옥리의 하인으로 분장하고 들어와 진지상을 올렸다. 이때 해월 신사에게 시를 한 편 내리고 또 멀리 달아나라는 ‘고비원주(高飛遠 走)’의 글을 내렸다고 한다.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등불이 밝아 물 위로는 아무러한 혐의의 틈이 없고 기둥이 마른 것 같으나 힘이 남아 있다. - 『동경대전』 윤석산 교수의 풀이에 의하면 등불의 빛이 물 위로 퍼져, 환하게 모든 것을 비추어 주듯이 자신은 아무런 혐의가, 또 아무런 잘못된 틈이 없다는, 자신의 무혐의와 결백을 노래한 시이다. 그런가 하면, 한울님의 도란 바로 물 위에 비추어 조금의 틈도 없이 환하게 빛나고 있는 저 등불과 같이 세상의 모든 곳을 밝혀주는, 바로 그러한 참된 진리라는 의미가 이중(二重)으로 담겨 있는 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자신이 세상의 잘못된 제도에 의하여 죽게 되어도, 그래서 자신이 펼친 무극대도가 지금은 죽은 나무와 같이 보이나, 그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라 후일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라는, 그래서 자신의 도가 이내 올바르게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시이다. 대신사의 거룩한 피는 대구 관덕당에 뿌려졌지만, 무극대도는 이어져 해월 신사의 지도력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갑오년 동학혁명의 뜨거운 불길로 번졌다. 의암 성사에 의해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도 300만 교인들이 힘을 합쳐 3·1혁명 만세 소리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대신사 순도의 피는 지금도 사해(四海)의 근원이 되어 흐르고 있다. 수암 염상철(守菴 廉尙澈) 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
흥해 손봉조의 집남원 은적암에서 돌아온 이후 대신사는 각 처로 다니며 가르침을 폈다. 이러한 결과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도 나날이 늘어나고, 또 그 지역도 넓어져 다만 경상도 일원만이 아니라 충청도에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따라서 이러한 인원을 보다 조직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방법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접(接)’을 조직하는 것이다. 본래 접이라는 이름은 유생들이 쓰던 용어이다. 그러나 대신사께서 만든 접은 이와는 다르다. 흥해 매곡동(현재는 매산리) 손봉조의 집에서 행한 접주제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포항시 흥해 손봉조의 집은 매우 중요하다. 동학 교도가 늘어나자 대신사는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지도하기 위하여 접(接)을 구성하였다. 그래서 각 처의 지도자들을 이곳으로 오게 하여 접주를 정해 주었다. 이때가 임술년(1862년) 12월 말이다. 본래 ‘접(接)’이라는 용어는 우리 전통 사회에서 쓰던 말이다. ‘접’은 예전에 글방 학생이나 과거를 보는 유생의 동아리를 이르던 말이었다. 또 보부상(褓負商)의 동아리를 이르던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신사께서 구성한 ‘접’은 이러한 개념과는 다르다. 접은 철저한 속인제(屬人制)에 의한 구성이다. 내가 한 사람을 포덕하면, 그 사람은 나의 접이 된다. 일컫는바 점조직과도 매우 유사하다. 한 사람이 잡혀도 그 사람을 포덕한 사람만 알 뿐, 그다음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경주 본부의 접주로 임명된 이내겸(李乃謙)은 본래 영천(永川) 사람이다. 그러나 이렇듯 경주 본부의 접주로 임명이 된 것은 동학이 본래 속지제(屬地制)를 따르지 않고 속인제(屬人制)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전도자(傳道者)와 도를 받는 사람 사이에 인적 유대를 중요시 여긴 까닭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도의 전수(傳受)는 ‘정신의 전수’라는 면이 강조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접 제도는 오늘까지 천도교에서 연원제(淵源制)로 전승되고 있다. 대신사는 이러한 접 조직을 통하여 갑자기 늘어난 동학 도인들을 조직하고 관리하였다. 그래서 손봉조라는 제자의 집에서 각처의 지도자들을 오게 하여 각 접의 접주(接主)를 정해 주었던 것이다. 각 접주가 마치 지역별로 정해진 듯하지만, 옛날에는 지금과 같이 이사를 하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서 죽을 때까지 몇 대를 이어가며 살았다. 그래서 비록 속인제이지만, 속지제와 같이 지역을 중심으로 접주를 정해 준 것이다. 접주를 정해 준 뒤에 새해인 계해년(1863년) 1월 1일 아침 대신사는 이에 대한 시를 쓴다. 訣 問道今日何所知 意在新元癸亥年 成功幾時又作時 莫爲恨晩其爲然 時有其時恨奈何 新朝唱韻待好風 去歲西北靈友尋 後知吾家此日期 春來消息應有知 地上神仙聞爲近 此日此時靈友會 大道其中不知心 도를 묻는 오늘, 아는 바가 무엇인가. 뜻은 새해 계해년에 있도다. 공을 이룬 것이 언제인데, 또 때를 만나겠는가. 늦는다고 한하지 마라. 그렇게 되는 것을. 때는 그 때가 있나니, 한탄한들 무엇 하리. 새해 새 아침에 운을 불러 좋은 때를 기다린다. 지난 해 서쪽, 북쪽에서 좋은 벗들이 찾아옴이여, 훗날 알리라. 우리의 이 집에서의 그날 그 기약을. 봄이 오고 있음을 마음으로부터 응하여 알 수 있으니, 지상신선의 소식 가까워지네. 이날 이때 신령한 벗들의 모임이여, 헤아릴 수 없는 마음, 그 가운데 자리한 대도(大道)여. - 『동경대전』 “지난해 서쪽, 북쪽에서 좋은 벗들이 찾아옴이여, 훗날 알리라. 우리의 이 집에서의 그날 그 기약을 [去歲西北靈友尋 後知吾家此日期]”이라는 이 구절이 바로 흥해 손봉조의 집에서 접주를 정한 사실이다. 지난해는 접주제를 행한 임술년(1862년)이다. 그해 말에 서쪽 북쪽에서 온 영우(靈友)들이란 다름 아닌 접주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접주제는 훗날 동학혁명을 보다 조직적으로 이끈 중요한 바탕이 된다. 손봉조가 살았다는 흥해 매산리의 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훗날 지은 집이 서 있다. 손봉조의 집 앞으로는 제법 큰 개천이 흐르고, 그 개천 건너편에는 마을 사람들이 쉬고 노는 정자와 당수나무인 팽나무가 서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인 이곳에는 그간 표지판 하나 없었다. 다행히도 필자가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동학역사문화선양회와 (사)동대해문화연구소가 2022년 11월 18일, 팽나무 부근에 ‘최초 동학 조직 안내 표지판’을 설치했다. 또한 포항시에서도 동학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발굴하고 이곳을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시설로 홍보하는 것과 동시에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장소로 개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 ✦ 다음 회 예고 : 대구 감영과 관덕당 편이 이어집니다. 수암 염상철(守菴 廉尙澈) 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
천도교대학생단동문회, 부산서 연례 정기모임 개최천도교대학생단동문회(회장 정연수)는 포덕 166년(2025) 10월 18일부터 19일까지 1박 2일간 부산 대동교구 일대에서 연례 정기모임을 개최했다. 이번 모임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문 40여 명과 청년회원, 대학생단 단원들이 함께하여, 서로 간의 우의를 다지고 지난 한 해의 신앙적 성장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행사 첫날인 18일 오후 3시, 개회식과 함께 ‘괄목상대(刮目相對)’ 발표회가 열렸다. 각자가 1년간 경험한 변화와 신앙의 결실을 나누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여섯 명의 동덕이 발표를 맡았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창용(수원교구) 동덕은 ‘신인간을 권하다’를 주제로, 『신인간』의 창간 100주년을 앞둔 현재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창용 동덕은 ‘참여하는 신인간, 함께하는 신인간, 다시하는 신인간’이라는 표어 아래 펼쳐지는 다양한 시도를 소개하며, “신인간 보내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이어서 이상미 천도교청년회 회장은 포덕 165~166년 청년회 및 대학생단 활동을 보고했다. 한울학교 운영, 겨레얼살리기 축제 참여, 일본 사적순례, 가톨릭 단체와의 교류, 3·1절 의암성사 동상 참례 주관, 2025년 ‘K-얼 화통한 대축제’ 준비 등 다양한 활동을 소개하며, 청년 세대가 교단 속에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선 박남문 동덕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만나는 해월’이라는 주제로, 지난 30년간 포항 지역에서 진행해온 해월 최시형 신사 관련 기념사업과 사적지 정비 활동을 돌아보았다. 이와 함께 최근 결성된 ‘포항 해월탄신200주년기념사업회’의 향후 계획을 전하며 ‘해월 신사와 포항시민이 노래로 만나는’ 행사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원암 김창석 동덕은 ‘동학 천도교 가치관에 기반한 협동 민주주의’ 발표에서, 임문호 선도사가 제창한 협동 민주주의 이념을 소개하며 “천도교가 신앙을 넘어 국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섯 번째 발표자인 성강현 대동교구 교구장은 ‘해월신사 유적지 21선’을 주제로, 해월 신사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주요 사적지를 소개했다. 성 교구장은 “해월 신사의 삶과 사상을 기리는 답사를 통해 신앙의 뿌리를 다시 돌아보자”고 권했다. 마지막 발표는 ‘탈종교시대의 천도교’를 주제로 허정문 동덕이 맡아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 종교 지형 속에서 천도교의 새 길을 모색했다. 허 동덕은 “이 시대의 천도교는 과거의 종교가 아니라, 새 시대를 여는 인간 정신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리 모두가 다시 태어나는 수운 대신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발표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부산 남구 홍곡로의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경내에 있는 홍암 나인협 선생 동상을 찾아 참례했다. 성강현 교구장의 집례로 열린 참례식에서는 나인협 선열이 민족대표 33인으로서 보여준 신념과 희생, 그리고 부산 지역에서 환원되어 사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성 교구장은 “대연교구(현 대동교구)가 나인협 선생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 세워졌으며, 표지비가 묻혔다가 다시 발굴되어 지금의 자리에 동상이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은 교단의 신념을 상징하는 이야기”라며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하자”고 당부했다. 둘째 날인 10월 19일에는 대동교구에서 합동 시일식이 봉행되었다. 대동교구 안동한 교화부장의 집례로 원암 김창석 선도사(마산교구)가 ‘유일집중’을 주제로 설교를 하였으며, 교구 교인과 동문회원 등 80여 명이 함께해 엄숙하고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일식이 진행되었다. 시일식 후 정연수 회장은 “대동교구의 초청으로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처음 방문했는데 교당이 참으로 쓰임새 있게 잘 지어져 감동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상미 청년회장과 조화정 대학생단 대표가 인사말을 전하며, 세대와 지역을 잇는 연대의 힘을 체감했다. 이날 점심은 대동교구 여성회가 교구 텃밭의 채소로 만든 물김치와 맛깔나는 반찬으로 차려졌다. 최만식 종의원의 동천고등학교 정년 퇴임을 축하하는 과일과 떡이 후식으로 제공되었다. 참가자들은 식사 후 교구 텃밭을 둘러보고 내년을 기약하며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
동학농민혁명정신, 경기도에서 꽃피우다’ 입법정책토론회 개최포덕 166년(2025) 10월 23일, 경기도의회 중회의실 2에서 김동규 경기도의회 의원이 주관한 「동학농민혁명정신, 경기도에서 꽃피우다」 입법정책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토론회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조례 제정의 필요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학계 전문가와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토론회의 주요 목적은 경기도 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 참석자들은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료의 수집 및 연구, 기념사업 추진, 교육 및 홍보 활성화 등 조례 제정을 통한 체계적 지원 방안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갔다. 이날 주제발표는 성주현 경희대학교 교수가 맡았으며, “경기지역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발표하였다. 이어 김갑곤 경기동학민회 사무총장이 “경기도 동학문화유산 보전 및 동학정신 선양 - 경기동학 해월 최시형 기념사업 추진방향”, 임형진 전 동학학회장(경희대학교 교수)은 “경기지역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제언”, 정정숙 종의원 의장(경기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경기도 동학농민혁명 정신 계승을 위한 조례 제정”, 김일섭 여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이 “동학농민혁명정신, 경기도에서 꽃 피우다” 등을 주제로 토론을 이어가며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농민과 민중이 주도한 대규모 사회운동으로, 민권 신장과 봉건체제 타파를 목표로 한 근대 민중운동의 시발점이었다. 경기도는 직접적인 전투 배경지는 아니지만,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가치와 정신을 경기도 차원에서 계승·확산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서게 되었다. 참석자들은 이번 토론회가 “경기도 차원의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조례 제정과 체계적 연구·교육 활성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며, 향후 도민과 청소년이 함께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역사문화 기반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동규 의원은 “경기도의 동학농민혁명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번 토론회에서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사료 수집과 연구, 기념사업 추진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례 제정 등 지원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
남원 은적암대신사께서 신유년(辛酉年, 1862년) 6월 용담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을 향해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대신사로부터 배움을 받기 위해 용담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문을 열고 맞이하니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開門納客 其數其然].’ 또 일 년이 지난 후에 먼 곳 혹은 가까운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많았다고 한다. 당시의 이러한 풍경을 대신사의 수양딸이 회상하는 기록이 있다. 대신사의 수양딸은 1920년대 후반까지 살았는데, 그때 이미 나이가 팔순이 되었다. 이 수양딸을 천도교의 이론가인 김기전(金起田)이 인터뷰한 기록이 있다. 인터뷰 기사에 의하면, 신유년 포덕 당시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신사께 예물로 곶감을 많이 가지고 왔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용담정 부근에 버려진 곶감꽂이만을 짊어지고 가도 인근 마을 사람들의 땔나무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손님들 조석(朝夕) 준비에 수양딸과 부인 박씨 부인은 나날이 바쁘고 힘이 들었으며, 특히 날이 저물어 저 많은 사람이 어디에서 다 잠을 자나 하고, 아직 어렸던 수양딸은 혼자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용담으로 들어가는 작은 산길은 마치 장터마냥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小春, 「大神師 收養女인 八十老人과의 問答」, 『新人間』 통권 16호, 1927. 9.) 이렇듯 많은 사람이 용담으로 모여들고 동학을 공부하니 유생(儒生)들과 관이 관심을 두게 되고, 마침내는 탄압을 하게 된다. 이에 대신사는 용담을 떠나 전북 남원으로 가게 된다. 용담을 떠난 대신사는 먼저 울산으로 갔다. 이곳에서 여러 도인을 만나고, 며칠을 머문 후 부산으로 간다. 부산에는 누이동생이 살았다고 한다. 표영삼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부산 대신동에 누이동생이 대신사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지은 산당(山堂)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부 산에서 배를 타고 오늘의 진해시(鎭海市)에 속한 웅천(熊川)이라는 마을에 가서 유숙하게 된다.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나 승주(升州)를 지나며 충무공(忠武公)의 사당에 배알하고, 충무공이 남겨 놓은 보국(輔國)의 정신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보기도 한다. 이어서 전라도 무주(茂州)에서 잠시 머문 뒤에 다시 길을 떠나 남원(南原) 땅에 이르게 된다. 대신사는 이렇듯 며칠을 걷고 걸어 남원에 이르게 되고, 남원 광한루(廣寒樓) 근처에 살고 있는 서형칠(徐亨七)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다른 기록에는 서공서(徐公瑞)라는 사람을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때가 12월 중순 무렵으로 추정된다. 길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난 뒤이다. 서형칠은 한약방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대신사의 제자 중 최자원(崔子元) 등 약종상을 하는 사람이 있어, 이들 제자들의 알선으로 남원의 한약상인 서형칠의 집을 찾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서형칠의 집에서 잠시 머물다가, 서형칠의 생질(甥姪)되는 공창윤(孔昌允)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열흘 가까이 머물게 된다. 이곳에 머물며 대신사는 서형칠, 공창윤, 양형숙(梁亨淑), 양국삼(梁國三), 이경구(李敬九), 양득삼(梁得三) 등을 포덕하기에 이른다. 남원에 도착한 지 10여 일이 지난 12월 그믐쯤 대신사는 이들의 안내를 받아 남원 교외의 교룡산성(蛟龍山城) 안에 있는 선국사(善國寺)라는 절을 찾아가게 되고, 이곳에서 산속으로 조금 떨어진 덕밀암(德密庵)이라는 작은 암자로 가게 된다. 이곳에 머물면서 수운 대신사는 자신이 스스로 이곳에서 ‘자취를 감춘다’라는 뜻의 은적암(隱跡菴)으로 그 암자의 방 하나를 이름하고, 1862년 3월까지 머물고 나서 경주로 돌아온다. 은적암이 있는 덕밀암은 전북 남원 동편, 교룡산성(蛟龍山城) 속에 있는 선국사(善國寺)라는 절에 딸려 있던 작은 암자이다. 이 산성은 원래 백제 시대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성은 조선 시대에 쌓은 것이다. 이곳은 국방상 매우 중요한 요새지로서 남으로부 터 침략하는 왜구를 견제하기 위하여 산성을 구축했다. 당시는 남원부(南原府)의 관리를 받아왔고, 남원부를 중심으로 하는 호남 일대와 호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목을 수비하던 전략 요새의 외성(外城)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산성 입구에는 이 산성을 지키고 수비하던 비장(碑將)들의 비석이 줄줄이 서 있어, 험난했던 지난 역사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은적암을 품에 안듯이 둘려 있는 교룡산성 뒤쪽으로 솟아 있는 산을 황룡산(黃龍山)이라고 부른다. 산등선이 그리 높지는 않아도, 산의 정상으로는 제법 기암괴석이 작은 병풍마냥 펼쳐져 있다. 이 산의 골짜기마다 어느 시대에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아흔아홉 개의 우물이 돌무덤으로 만들어져 있다. 산성의 이름이 교룡(蛟龍)이듯이, 백 개의 우물을 만들면 용이 승천을 한다는 전설에 따라 아흔아홉 개의 우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교룡이라는 산성의 이름처럼 아직 은 용이 되지 못한, 그러므로 이무기의 슬픔과 잠재적 가능성이 꿈틀거리듯 자리하고 있는 산성. 이 산성의 이름은 이곳 지형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곳에 은거한 대신사는 달이 뜨는 밤이면 능선에 올라 「처사가(處士歌)」를 부르기도 하고, “시호(時乎) 시호 이내 시호 부재래지(不再來之) 시호로다.” 하는, 상원갑(上元甲)의 새로운 전기를 이룰 때가 왔음을 암시적으로 노래한 「검결」을 부르며, 목검을 잡고 검무를 추기도 하였 다. 대신사께서 제세(濟世)를 위한 열망과 심신을 아울러 단련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이 은적암에 머물면서 대신사는 앞의 『도원기서』 인용문에서 말하듯이 동학의 중요한 경편인 「논학문」과 「도수사」, 「권학가」를 짓는다. 은적암은 대신사께서 새로운 계획을 세운 곳이자 동학의 중요한 경전이 저술된 곳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자리에는 다만 천도교서울교구 동덕들이 세운 표지판만이 덩그러니 서 있다. 1989년 대신사 탄신 165돌을 기념하여 서울교구에서 7일간 특별수련회를 개최하고 마지막 날인 10월 29일(시일) 은적암으로 서울교구 교인 226명이 성지순례를 하면서 ‘은적암 터’ 성지 표지판을 세웠다. 저자도 표지판을 세울 때 청년회 부회장으로 참여하여 표지판과 시멘트, 모래, 자갈, 물통 등을 등에 지고 산 중턱에 올라 표지판을 세우고 나서 대신사의 당시 상황을 그리며 남원 시내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듯 작은 표지판이라도 세운 까닭에 은적암을 세상에 알리고 이곳을 성역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듯이 동학의 유적지 발굴을 비롯한 표지석 또는 표지판을 세우는 사업에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다음호 예고 : 흥해 손봉조의 집 '수운 대신사, 최초로 접주제를 시행하다' 편이 이어집니다. 수암 염상철 (守菴 廉尙澈)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