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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전주와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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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전주와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 편집부
  • 등록 2025.09.17 16:20
  • 조회수 1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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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포덕 166(2025)년 9월 17일, 전주문인협회 초청(완산도서관) 특강 원고이다.


1. 종교사적 관점으로 본 역사관

우리는 흔히 서양의 역사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의 역사라고 말한다. 서양에 대비되는 동양의 상징적인 역사는 무엇인가? 보통 동양은 불교 문명권이라고 말한다. 물론 유교[유교(儒敎)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 공자가 체계화한 종교적·윤리적·정치적 사상 체계이다. 유교는 인간관계 속에서의 도덕적 실천, 사회 질서의 유지, 정치적 통치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불교, 도교와 함께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이념 체계인 삼교(三敎 유교, 불교, 선교) 중 하나로 분류된다.], 힌두교[(힌두교(हिन्दू ध, Hinduism)는 인도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로, 인도, 네팔, 발리 등지에서 주요 종교이다. 2020년 기준으로 11.6억명(세계 인구의 15%) 이상이 믿으며, 신자 수는 기독교, 이슬람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이슬람교[이슬람이란 ‘절대 순종한다’는 뜻이며, 이슬람신도를 가리키는 무슬림(Muslim)이라는 용어는 ‘절대 순종하는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슬람교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인 알라(Allah)의 가르침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기독교 등의 셈족계 제종교를 완성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크교(시크교는 15세기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주로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창시된 종교이다.), 자이나교[(자이나교(Jainism)는 인도지역에서 발원한 인도 계통의 종교로 명칭의 어원인 '지나'는 승리자라는 의미이며 '자이나'는 승리자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등 각 나라별로 민속종교까지 그 영향력은 과히 역사라 할 정도로 막대하다.  


수운대신사존영.png

▲수운 최제우 대신사 존영. 대신사 존영은 1933년 고희동 화백이 그린 초상화이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중이며, 대신사 초상화는 총 5점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서 본 초상화가 가장 실물에 가깝다는 평가이다.

 

17세기 초 서양학문으로 이해되었던 서학(西學)은 18세기 후반 신앙으로 받아 들려지며 모진 탄압에서도 교세는 나날이 확장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는 유교 즉 성리학이 국교라 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때 조선에 동학(東學)이라는 새로운 종교사상이 창명되었고, 훗날 조선은 물론 동아시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동학은 1860년 4월 5일(음력) 경주 용담에서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창명한 새로운 도(道)요, 종교철학사상이다. 


동학의 명칭이 확정되기 전 처음에는 무극대도 (無極大道)라 칭하였고, 그 다음에는 천도(天道)로 칭하다가 결국 동학(東學)이라 반포하였다. 그런데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동학 명칭을 세상에 알릴 때 전라도 남원땅 은적암에서 동학론, 즉 논학문을 지어 반포함으로 훗날 전라도에서 동학혁명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사상적 계기가 된다. 당시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남원을 중심으로 전주 등 전라도 일대를 순회하면서 동학을 포덕하게 된다.


2. 동학이라는 명칭의 유래

동학의 동(東)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동의보감(東醫寶鑑)(조선 시대, 1596년에 임금의 명을 받아 1610년에 허준이 완성한 의학 서적),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대동여지도(東醫寶鑑)조선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동서와 남북의 이어보기에 초점을 맞춘 병풍식의 첩 형식을 채택하여 1861년에 간행한 지도집. 지도첩.]’ 등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조선(朝鮮)의 국명(國名)에서도 동(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조선의 어원이 ‘동방’과 ‘광명’이라는 뜻으로, ‘동쪽의 해 뜨는 곳, 또는 아침의 나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곳,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동학은 ‘동방의 학문’이란 뜻으로,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어둠을 걷어내고 다시 밝음을 열어가는 새로운 세상의 학문이자 사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동학이라는 명칭은 앞서 설명했듯이 무극대도, 천도, 동학이라는 여러 명칭을 사용하였다. 훗날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신사 뒤를 이어 동학 3세 교조가 된 의암 손병희 성사는 1905년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세상에 크게 선포하였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저술한 〈교훈가〉에 “꿈일런가 잠일런가 무극대도 받아내어...”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논학문(동학론)〉에 “내가 또한 동(東)에서 나서 동(東)에서 받았으니 도(道)는 비록 천도(天道)나 학(學)인 즉 동학(東學)이라.”라고,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일반적으로는 동학의 명칭에서 서학(西學)에 반대하고 대응하는 차원에서 생겨났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짧은 생각에 머무른다. 어느 사상이나 종교가 탄생할 때 무엇을 반대하고 대응하는 차원에서 나왔다고 정의하면 그 사상에 대한 정당성은 물론 바른 이해를 하는데 너무 협소해진다. 물론 당시 서학과 서양에 대한 위기의식은 분명 존재했다. 동학이 창도되는 전후에 서학만이 문제가 되었던 게 아니다. 당시 시대 상황은 외부 세력 못지않게 조선의 내부문제도 심각하였다. 인간을 구별 짓는 신분차별과 탐관오리의 착취, 외세에 대응하지 못하는 조선조정,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깨어나는 민중, 나라의 주인이라 자각하는 백성들, 인권과 자주,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는 시대적 상황 등 수많은 원인들이 있었다.


3.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

해월신사사진.png

△해월 최시형 신사 사진(해월신사 사진은, 1898년 6월 1일 단성사 뒤편 고등법원 감옥서(監獄署_교형장)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6월 2일 순도(순국) 직전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가 찍은 72세의 해월신사 모습이다. 사진 상단 오른쪽에 '처교죄인 동학괴수 최시형'이란 팻말이 보인다. 이 사진은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중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동학사상에 근거하여 일어난 우리 근대사의 반봉건·반외세 자주독립운동이다.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의 관계는 ‘근원 없는 물이 없고, 뿌리 없는 나무 없다’로 비유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발생과 전개에서 동학사상이 빠질 수 없다는 의미다.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시천주(侍天主) 즉,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사람은 곧 하늘’이라는 인즉천(人卽天) 사상을 강조하였다. 또한 수운 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신사의 ‘사람이 하늘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는 인내천(人乃天)·사인여천(事人如天)의 가르침을 펼쳤다.


4. 동학 집강소 설치와 민주자치시대


동학농민혁명은 고부봉기를 시작으로 무장기포와 황토현 승전, 그리고 장성 황룡에서 전라감영군과 경군을 차례로 격파했다. 또한 장성, 정읍, 태인, 원평, 독배재, 삼천동, 효자동, 용머리고개를 거쳐 1894년 5월 31일(음력 4월 27일) 조선 건국자의 본향이자 호남의 수부(首府) 수부(首府)(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도시, 한 도의 감영이 있던 곳)였던 전주성을 무혈입성(無血入城)으로 함락시켰다.


전주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의 수부였기 때문에 전주지명을 확장하여 호남, 즉 전라도까지 포함한다고 봐야 한다. 조선 역사에는 호남의 가치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말이 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어록에 나오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즉, “만약에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물론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도 전라도는 오늘날의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를 포함하였다. 그 행정구역의 중심지가 전주였다. 당시 전주성 안에는 전라감사가 근무하는 감영 즉 선화당이 있어 명실상부하게 전라도의 행정중심지이자 지방정치를 총괄하였다.


그래서 호남제일성, 호남제일문 등 역사적 건물에도 전라도 상징의 명칭이 따라 붙었다. 바로 그 전라도 행정의 중심이자 조선 왕조, 즉 이씨 조선의 본향인 전주성을 동학혁명군이 점령하고 전라도 일대를 호령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특히 조선 정부와 동학혁명군이 전주화약을 통해 집강소에 의한 민주자치시대를 열었다는 것은 조선은 물론 동아시아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폐정개혁안 12개조>

1. 동학도는 정부와의 원한을 씻고 서정에 협력한다.

2. 탐관오리는 그 죄상을 조사하여 엄징한다.

3. 횡포한 부호를 엄징한다.

4. 불량한 유림과 양반의 무리를 징벌한다.

5. 노비 문서를 소각한다.

6. 7종의 천인 차별을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평량갓을 없앤다.

7. 청상과부의 개가를 허용한다.

8. 무명의 잡세는 일체 폐지한다.

9. 관리 채용에는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10. 왜와 통하는 자는 엄징한다.

11. 공사채를 물론하고 기왕의 것은 무효로 한다.

12. 토지는 평균으로 나누어 짓게 한다. 


조선 왕조의 발상지이자 전라도 수부인 전주성 점령은 여느 지방도시를 점령한 사건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전라도 각 군현에도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더욱이 전주성 선화당에 집강소 총본부격의 자치, 통치기구가 있었다. 이는 동학혁명군의 일방적 자치행위가 아니라, 전봉준 총대장, 손화중 총관령 등 혁명군 대표와 조선왕조의 위임을 받은 홍계훈 초토사와 김학진 전라감사 간의 협약에 의해 폐정개혁을 수행한 국가적인 차원이었다.


5. 전주동학에서 꼭 기억해야 할 사람

전주동학농민혁명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서영도 장군과 이복용 장수 이야기다. 서영도 장군은 완산 접주 출신으로 동학혁명군이 전주성을 점령할 때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전주성 밖 완산 집강소 책임자로서 폐정개혁을 혁명적으로 단행한 인물이었다. 그는 혁명 좌절 후 1895년 3월까지 최후 항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남문 밖 초록바위에서 ‘동학거괴 서영도’ 이름으로 공개 총살형을 당했다. 이는 그의 역할과 활동이 대단히 컸음을 보여준다.

이복용 장수는 소년접주 출신으로 완산전투 시기에 선두에서 큰 활약을 하다가 전사하였다. 이복용은 애기접주의 별칭으로, 혁명군의 사기진작은 물론 관군들에게는 두려움의 존재였다. 애기접주 즉 소년접주들의 활약은 전국적으로 용맹을 떨쳤는데, 대표적으로 해주접주 김구(김창수), 장흥접주 최동린, 전주접주 이복용 등이 상징적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전주성 점령 과정에서 여성 동학군들이 큰 몫을 해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여성 동학도들이 성안에 몰래 들어가 대포 총구에 물을 가득 채워놓은 등 목숨을 건 일화들이 많다. 여성접주의 상징적 인물은 장흥 지역에서 활약한 이소사 여장군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6. 2차 동학농민혁명과 항일무장투쟁

일본군의 침략에 맞선 2차 동학농민혁명은 일본군과 대규모로 항쟁한 우금티 전투 패배 후 각 지역으로 흩어지거나 보은, 장흥, 대둔산 최후항쟁처럼 집단적으로 저항한 여러 이야기가 있다. 전주지역도 마찬가지로 최후항쟁 후 쫓기고 죽임을 당한 참담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주 초록바위 천변에서부터 다가산 천변에 이르는 지역에서 체포당한 동학의병들은 숱한 죽임을 당했다. 일본 국왕 메이지의 "동학당을 모조리 살육하라"는 특명을 받은 일본군과 그 지휘를 받았던 관군은 초멸작전을 펼쳐 총살형은 물론이고 참수형,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살하였다. 접주는 물론 무명 동학혁명군 수백, 수천 명이 처형을 당해 전주천의 물이 1개월 이상 핏물로 흘렀다는 말들이 전해오고 있다. 바로 이런 역사의 현장에 기념비는 물론 표지판을 세워 역사를 잊지 않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1차 기포, 반외세 2차 기포, 보국안민· 광제창생· 제폭구민· 척양척왜의 대의를 위해 기포하여 엄청난 피해로 풍비박산이 난 듯 했으나, 천도교로 거듭난 동학은 기미년 3‧1혁명을 통해 제2의 동학혁명으로 전개되었으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동아시아 근대사에 큰 영향을 주었고, 세계 혁명사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 위대한 역사였다. 그 혁명 정신은 독립운동은 물론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민중항쟁, 6‧10민주항쟁, 최근에는 촛불혁명, 빛의 혁명 등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분단된 남북통일을 달성해야만 동학농민혁명은 성공한 혁명이 될 것이고 희생된 동학선열들의 후손된 자로서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특히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독립유공자 서훈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동학농민혁명의 진정한 명예회복과 올바른 역사관이 정립될 것이다. 


7. 동학농민혁명과 문학의 향기


박홍규그림.png
△박홍규 작(전봉준 배들평야를 가다)

 

동학농민혁명을 시나 소설로 펴낸 대표작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동학혁명 1백주년(1994년) 즈음 우리들은 동학농민혁명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가를 말할 때 남한의 송기숙 교수(역사소설 『녹두장군』), 북한의 박태원 선생(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꼽았다. 송기숙 교수는 ‘녹두장군’ 개정판 후기를 통해 '민중이 자발적 합의에 이르면, 그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송기숙 교수께서 살아생전 나와 몇 번 만나 대하소설 『녹두장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작가가 글을 쓸 때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녹두장군』도 원래 10권으로 계획했지만 12권으로 늘어나면서 글이 중간 중간에 늘어졌다”고 고백하였다.


박태원 선생은 『갑오농민전쟁』 집필 과정에서 시력과 전신마비 등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부인 권영희의 도움으로 완성했다고 알려졌다. 박태원은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까지 방대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1894년 당시의 법제와 풍속, 역사적 사건들을 연구하고 고증하였다 한다.

 

박홍규그림02.png

△박홍규 작(목판화, 피노리 가는 길)

 

동학과 관련한 수많은 문인들을 소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분 더 말씀드리자면 신동엽 시인의 대서사시 「금강」을 뺄 수가 없다. 나는 동학 관련 책 중에 「금강」을 가장 신명나게 읽었다. 읽고 또 읽고 한 열 번은 읽은 것으로 기억난다. 「금강」은 실존인물인 전봉준과 가공인물인 신하늬로 대표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동학혁명을 형상화하였다. 「금강」은 동학혁명이 상징하는 민족적 수난과 고통의 과정이 이 땅 역사의 비극성을 새로이 인식하게 해주며, 새삼 이 땅의 주인이 한민족 스스로이며 민중 그 자체임을 소중하게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큰 의미를 남겼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우리 고장 이곳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 두 분을 소개한다. 하나는 동아일보 신춘당선작 안도현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이다. 안도현 시인은 한 때 나와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그리 길지 않은 시이다. 시 전문을 그대로 소개하고 각자 느낌을 알아서 평가해보기 바란다. 


전봉준마지막.png
▲녹두장군 전봉준의 마지막 모습 1895년 2월27일 한성 일본영사관으로 압송된 전봉준이 재판소로 이송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일본인 사진사 무라카미 덴신이 촬영한 것으로(국가기록원 제공), 현재 전주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중이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全琫準) 

                                         안도현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안도현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문학동네, 1997년 1쇄, 2002년 4쇄) 중에서.


작가들을 소개할 때 빼먹으면 좀 서운해할 사람이 있다. 바로 이광재 소설가이다. 이광재 작가가 동학 관련 책자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 등 여러 권을 출간했지만 최명희 선생기념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소설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나라를 잃어가는 조선 말기 격동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동학농민군, 선비들, 정치가들, 그리고 이름 없는 백성들의 치열하고 진지한 삶을 담아냈다는 평가들이다. 이광재 작가는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민주주의의 화신이라 불렸던 김근태 선생의 조직에 들어가 함께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동학 관련 유적지도 함께 도보로 탐방했던 기억들이 솔솔 난다. 이 작가는 최근에 장편소설 『청년 녹두』를 펴냈다.

 

끝으로 여기에 계시는 시인, 소설가 중에 한강 작가의 뒤를 이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분이 꼭 나왔으면 하는 말로 본 강연을 마칠까 한다.

 

이윤영.png

송암 이윤영

전주동학혁명전시관 관장. 저서로는 수운 최제우 선생 일대기 『만고풍상 겪은 손』, 동학농민혁명장편소설 『혁명』, 전주역사문화의 자부심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동학대서사시, 『모두가 하늘이었다』(출간 예정. 오마이뉴스 74화 연재작, 동학문화대상 수상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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