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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물씬한 지상천국불만스러운 삶을 포기하는 길에 애먼 천진무구한 어린이를 재물로 삼았던 명아무개 교사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명 교사는 귀신에 씐 것도 아니고 날 때부터 악마도 아니다. 문제가 많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 교사 생활을 했던 선생님이요, 우리 이웃이었다. 인내천, 동학 천도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 내 안에 한울님을 모신 사람은 이에 한울님이다(인내천) 따라서 이렇게 한울님을 모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한울님을 모신(시천주) 존재이기에, 한울님이다. 그런 한울님을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를 옛부터 꼬마라고 했다. 고마는 신을 말한다. 말세다. 어둠이 너무 깊은 세상이다. 극도로 자신을 위하는 마음, 각자위심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망친다. 아무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수운 최제우 선생이 말한 각자위심이 너무나 가득찬 사회다. 인내천은 존중과 배려다. 다만 좋은 게 좋다는 휴머니즘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안의 한울님을 깨닫고 만남으로써 영원한 평화를 얻는 길이다. 굳이 말하자면 영성의 휴머니즘이다. 이것이 후천세상을 여는 다시개벽이며, 봄빛 물씬한 지상천국이 아닐까? 글, 이상우(서울교구) 일용행사가 도(道) 에서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단상과 깨달음의 글,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 교리 탐구 등을 주제로 이어집니다. 원고주제, 분량, 형식은 자유입니다. 교인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원고접수 : news@chondogyo.or.kr -
2025 <수운학당(水雲學堂)> 교사 양성 프로그램 운영 계획 발표2025년 <수운학당(水雲學堂)>이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교구 어린이·청소년 교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운학당의 교육 품질을 한층 높이기 위해 진행된다. <수운학당>은 교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각 지역 교구를 활용하여 효율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동학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는 중요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교구 어린이·청소년 교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한다. 이번 교사 양성 프로그램은 10차시, 20시간으로 편성되며, 줌(Zoom)을 활용한 온라인 교육 방식이 중심이 된다. 본 프로그램은 <수운천자문>과 <해설집>(1,2권)을 주요 교재로 사용하며, 교육생들의 참여도 및 이해도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수행평가를 도입한다. 대상자 모집 기간은 3월 13일부터 22일까지이며, 대상자 확정 발표는 2025년 3월 24일(화)에 할 예정이다. 교육 기간은 3월 27일부터 4월 29일까지(10차시, 총 20시간)이며, 줌(Zoom)을 활용한 온라인 교육으로 진행되며 오프라인 교육은 추후 공지할 예정이다. 교육비는 15만원(교재 포함)이며 수료 조건은 출석 80% 이상을 충족하여야 하며 수료자는 수운학당 교사 수료증을 발급받게 된다. 한편 이번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수운학당은 실력 있는 교사를 양성하여 교육의 품질을 높이고, 각 지역 교구에서의 수운학당 운영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 프로그램은 동학 천도교의 정신과 사상을 선양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수운학당의 운영 여건을 더욱 튼튼히 할 수 있다. 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동학소년회 관계자는 “2025년 <수운학당> 교사 양성 프로그램은 전국적으로 희망자를 모집하여 적격자를 선발하며, 교육 과정을 통해 교사들은 수운학당의 교육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지역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
포덕 166년 천도교 남정포 정기총회 및 강도회 개최천도교 남정포 정기총회 및 강도회가 포덕 166년 3월 8일(토)~9일(일) 경주 용담성지 용담수도원과 동학수련원에서 이틀 동안 개최되었다. 원처 근처에서 참석한 동덕들이 오후 3시까지 등록을 마치고 오후 4시부터 대신사 태묘 참례를 시작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포덕 166년 정기총회는 서울, 경기, 울산, 부산, 통영, 진주, 남해 지역에서 57명의 원주직 및 일반교인이 자리를 함께 하여 첫날은 신입교인(권대천) 입교식, 도정 이·취임식(전임 맹암 정의맹, 신임 이암 정의필), 신임 원직자 도첩 수여, 전임도정 감사패 전달, 모범교인 표창장 수여 등 남정포 발전방향에 대한 열띤 토의로 분위기를 돋구웠다. 정의필 신임 도정은 여는 말에서 "참석해주신 동덕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선배 동덕님들이 이루어 놓은 큰 물결에 맞춰 잘 해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남정포는 교령, 종법사, 연원회 의장 등 다수의 지도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영광스런 금자탑에 부응하는 남정포가 되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시고 한마음 한뜻으로 동귀일체 하도록 해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도가에 행복과 건강이 넘치는 생활하시길 심고합니다"라고 밝혔다. 화암 최상락 용담수도원장은 환영사에서 "이렇게 용담에서 총회를 개최하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용담성지 관리자로서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남정포는 모든 동덕들의 귀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정 이, 취임을 축하드리며 도첩을 받는 분과 오늘 입교하시는 분도 축하드립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대신사님의 호흡과 정기를 흠뻑 느끼고 가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시암 정의적 진주시교구장의 집례로 진행된 이번 정기총회는 환원하신 故 명암 김영철, 故 포암 하덕수 동덕의 추모 심고와 함께 개식-청수봉전-시작심고-주문 3회 병송-여는 말씀-환영사-전차회의록 낭독-결산보고-감사보고-도정 이임사 및 신임 도정 봉고문 낭독- 전임 맹암 정의맹 도정에게 감사패 전달 및 모범 교인 표창장 수여(혜허당 허채봉) - 의안 상정 및 토의 등으로 이어졌으며 임원 선출(감사 2명,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총무, 재무 각 1명)이 있었다. 이번 총회는 동학수련관 대회의실을 활용하여 편안한 좌석과 부대시설을 잘 활용하여 남정포 발전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고, 이튿날은 용담수도원장의 지도하에 새벽 기도식과 수련이 있었고, 용담정 참례 후 이암 정의필 신임 도정의 강도(주제:천도교 남정포 발전과정)와 포덕교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설득의 기술’을 주제로 한 초빙 강사(손성화 박사)의 강의는 참석자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동학수련관의 대회의실 및 숙소는 참가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였고, 진성관에서 제공한 세 끼의 식사는 용담수도원장과 내수도의 정성이 깃들어 있어 모두가 만족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짧은 1박 2일의 여정이었지만 참석자 모두가 보람을 느낀 심화기화를 통한 동귀일체의 시간이었다. 시일식 봉행 후 점심 식사를 하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모든 행사를 마무리하는 종회 심고 후 내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자료 및 사진 제공 : 남정포 -
포덕 166년 3월 온라인 어린이 시일식 봉행포덕 166년 3월 9일에는 포덕 166년을 맞아 어린이 시일식이 세 번째 시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3월 시일식에서는 부산시교구 윤수호 어린이가 집례를, 서울교구 김교영 어린이가 경전봉독을 하였다. 설교는 선구교구 박대현 동덕님이 맡아 어린이들에게 좋은 말씀을 전해주셨다. 온라인 시일식은 11시부터 11시 30분까지 진행되었으며, 시일 이후 11시 30분부터 12시까지는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이 진행되었다. 사전에 시일 및 활동에 필요한 교구와 재료들을 시일 전에 신청한 교구와 자택으로 발송하였으며 이번 어린이 활동은 천도교 대학생단 이예나 동덕이 ‘독립운동가 역사북아트’를 진행하였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신 손병희스승님에 대한 공부를 먼저 한 후, 독립운동가 역사 북아트 활동을 통해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서재필, 주시경, 신채호 등의 업적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각 인물의 이야기를 읽고 그림과 글로 표현하며 역사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열심히 북아트를 완성한 아이들은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되새겼고, 뜻깊은 활동을 마무리했다. 현재 온라인 어린이 시일식은 매달 둘째 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시작되며, 전국의 교구 어린이들이 온라인을 통해 함께 시일을 봉행하고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 또, 매월 둘째, 넷째 시일 저녁 9시에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 저녁 기도식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참가를 희망하는 교구 및 어린이들은 천도교 청년회로 문의하면 된다(010-7172-5660) 기사 및 사진 제공 : 천도교청년회 -
제54차 천도교청년회 정기총회 및 대학생단 신입생 환영회 성료지난 3월 8일 오후 2시, 천도교 수원교구에서 제54차 천도교청년회 정기총회 및 3월 대학생단 신입생 환영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청년 동덕들과 대학생단 동덕들이 한자리에 모여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날 행사는 이재선 청년회장의 개회사로 시작하여, 종무원장의 영상 격려사가 이어졌다. 이후 의안 결의를 통해 청년회의 주요 안건들이 논의되었으며, 행사는 청년회가 제창으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이번 정기총회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여성 동덕들에게 장미꽃을 전달하며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업적을 기리고 인권 신장을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청년회 회원들과 대학생단 단원들은 정기모임을 통해 새로운 신입 대학생단 단원들과 교류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친목을 다졌다. 청년회 새 집행부 구성 및 결의 다짐 이번 총회에서는 청년회의 새로운 회장단과 집행부를 선출하고, 대학생단 임원도 새롭게 구성했다. 새롭게 출범하는 집행부는 올해의 활동 계획을 공유하며 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진 3월 9일에는 천도교 수원교구에서 시일식이 봉행되었으며, 어린이와 학생, 교인 동덕들이 참석하여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신앙심을 다졌다. 천도교청년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며, 새로운 회장단과 집행부가 주도할 다양한 행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청년회 관계자는 "많은 응원과 관심 속에 청년회와 대학생단의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 및 기사 제공 : 천도교청년회 -
[칼럼] 3·1 대혁명을 제대로 지키자올해도 어김없이 106년 전의 3·1절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정부 행사는 비록 작년 12.3 비상계엄을 발효하면서 벌어진 국헌 문란으로 수괴가 체포되어 단죄될 지경에 처해서 약소하게 기념식을 거행하였지만, 전국적으로는 다른 해 못지않게 많은 지자체와 수많은 시민단체가 나서서 106년 전의 함성을 재현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날 가장 기뻐하고 가장 기념할 곳은 우리 천도교단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전 11시 중앙대교당에서는 엄숙한 기념식이 거행되었고 기념식 뒤에는 참석한 교인 모두가 함께 손에 손에 태극기와 궁을기를 들고 인사동을 거쳐서 탑골공원까지 행진했다. 인사동 거리를 지나면서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니 주변 시민들의 박수와 특히 신기한 듯 쳐다보는 외국 관광객의 카메라 셔터가 연신 터져나갔다. 탑골공원에서는 의암 성사님의 동상 앞에서 다시금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은 심고를 드림으로써 행사가 종결되었다. 3·1대혁명은 우리 천도교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모든 교인을 하나가 되게 하는 날임을 확인한다. 3·1대혁명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 교단이 들인 노력은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동학혁명이 좌절된 후 혁명의 최후 지도자였던 의암 손병희 성사님은 동학을 천도교로 변경하고 1900년대 초의 민족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성사님은 언론과 교육, 출판 운동 등으로 민도를 높이는 개혁을 전개하다가 1910년 나라가 일본에 강제 병합당하자 “내 앞으로 10년 안에 반드시 나라를 되찾으리라” 다짐하셨다. 우선 성사님은 1913년부터 전국의 천도교 교역자 483명을 차례로 불러 우이동 봉황각에서 특별 연성수련을 실시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장차 국가를 위해서 쓰일 인재를 미리 양성해 놓고자 한 지도자의 혜안이었다. 세계 제 1차대전이 종결되고 민족자결의 운동이 세계적으로 유행하자 성사님은 우리의 독립을 선언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직감하고 1918년 4월부터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한 중앙대교당 신축을 결의해 신도들의 헌금을 받기 시작했다.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위장술이었다. 드디어 1919년 천도교는 전체 인구 1,600여만 명에 300만 명의 신도수를 가진 조선 최대의 종단이 되었다. 천도교는 일제의 압제에 대항할 충분한 인원과 조직 그리고 자금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학도들만이 참여했던 동학혁명의 실패를 누구보다도 절감했던 성사님은 3·1혁명을 단독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3·1혁명은 제2의 동학혁명이 되어야 했고 더 이상의 실패가 아닌 성공하는 혁명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도교는 모든 종단과 정관계 모두에 연락하였다. 민족운동에 동참을 호소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도급 인사들은 거절하고 있을 때 마침 개신교단에서도 비밀리에 독립청원이 추진되고 있었다. 접촉을 시도한 여암 최린 선생의 노력으로 천도교와 개신교는 함께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이웃 종단의 참여를 모색하였다. 이에 불교계가 동참하니 비로소 종교계의 연합적 성격으로서의 독립혁명이 전개될 수 있었다. 3·1일 한반도는 독립만세의 함성으로 진동했다. 1910년 일본의 강압에 의한 국토 병탄으로부터 10여 년을 인고하던 전 민족이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함성의 무리에서는 신분, 연령, 남녀 차이도 없었고, 이념과 종교도 통합되어 있었다. 선두에는 우리 천도교인들이 앞장섰고 수많은 민중이 동참하였다. 그만큼 희생도 컸음은 당연하였다. 교단의 모든 조직과 인원 그리고 재정적 뒷받침까지 그야말로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 3·1 대혁명은 상해 임시정부의 설립으로 이어져 우리 독립운동의 초석이 되었고 전세계에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단합성을 과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3·1혁명의 3대 원칙인 운동의 대중화, 일원화(대동단결) 그리고 비폭력은 지금까지도 3·1운동의 최대 정신으로 남아 인류의 위대한 가치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의 평가이다. 과연 국민들에게 3·1혁명을 물어보면 누가 먼저 떠오를까? 단연코 유관순일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역할이 중심이었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통계치로도 당시 참여한 종교계 인물과 구금 희생된 인명의 수에서도 기독교가 훨씬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100주년이었던 2019년에 남북합동 기념식을 위한 평양대회에서는 천도교는 아예 정부 초청에서도 빠져버려 있었다. 물론 우리 교단이 타 종단이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것에 대하여 폄훼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감사하고 치하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올바른 3·1혁명의 평가일까? 천도교단이 나서서 한 준비는 물론 민족대표 33인을 모을 때 개신교단 측에 참여의 조건으로 지급한 거금 5천 원은 대부분이 모른다. 특히 이종일 선생의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인쇄와 운송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 극적임에도 불구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 경전 말씀에 “남의 적은 허물을 내 마음에 논란하지 말고, 나의 적은 지혜를 사람에게 베풀라”고 했다. 그렇다. 진정한 천도교인이라면 아무러면 어떠냐 3·1혁명 이후 우리 민족이 단합되고 독립운동의 전선이 강화되어 끈질긴 독립전쟁을 이어 나갈 수 있으면 됐지. 다 맞는 말이다. 설마 성사님과 3·1혁명을 준비한 선배들이 누가 알아달라고 하신 분은 한 분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주인이 아닌 객이 되어버린 듯한 우리의 왜소한 모습은 모두를 쓸쓸하게 한다. 그래서 다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제부터라도 누가 알아달라는 측면이 아니라 교인들의 가슴에 더욱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한다. 중앙총부의 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학문적 연구는 더욱 절실하다. 결국 남는 것은 학자들의 연구 축적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교과서 수록과 언론의 대국민 홍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성사님이 양성한 483명은 3·1혁명을 위해서 고향에서 어떤 일을 하였는가? 보성사 팀의 끊임없는 독립선언 제의는 어떤 의미였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던 성사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3·1혁명이 시작된 그 순간의 천도교 지방 교구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정말로 기독교인보다도 천도교인이 참여 숫자가 적은 것일까?… 3·1 혁명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 연구할 주제는 너무나 많다. 나아가 천도교인이 3·1혁명의 진정한 주인이고자 한다면 3·1정신을 제대로 계승한 행동을 해야 한다. 3·1혁명의 가장 위대한 정신은 자주와 단합이다. 과연 우리는 대외적으로 얼마나 자주적인가를 고민해 봐야하고, 무엇보다도 국민화합에 앞장서야 한다. 마침 오늘의 한국사회만큼 갈등이 심화된 나라도 없다고 한다. 우리가 각자위심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동귀일체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모범적인 모습을 솔선해야 한다. 대화합의 정신이 3·1정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것에서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3·1혁명의 주인은 천도교이기 때문이다. 글 년암 임형진(동서울교구, 경희대 교수) *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해월신사 법설 : 천지이기 p.242 -
포덕 166년 3월 9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천지부모와 개벽운수'설교 : 천지부모와 개벽운수(종무위원 광암 윤철현) -
천도교종학대학원, 천도로 가는 배움의 길 함께천도교종학대학원(원장 이상면)은 3월 8일 오전 10시 30분 수운회관 807실에서, 수료식을 개최하였다. 수료식은 서소연 교무차장의 집례로 개식, 청수봉전, 주문3회 병송, 경과보고, 인사말(이상면 원장), 격려사(이범창 종무원장), 축사(변종제 동문회장), 수료증 수여, 상장수여, 천덕송합창(우리의 길), 심고, 폐식 순으로 진행되었다. 수료식 후 기념사진 촬영이 수운회관 807호와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진행되었다. 이상면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입학시기가 다르고 공부하는 곳도 일정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동동학미 염념동(同同學味念念同) 즉 같고 같은 배움의 맛, 생각마다 같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함께 공부했음"을 강조하고 "교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천도로 가는 배움의 길을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범창 종무원장은 격려사를 통해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며 더욱 더 주문을 염념불망하여 공부에 정진하여, 천도교의 큰 일꾼이 되어달라"고 하였다. 변종제 동문회장은 종학대학원 과정을 회고하고 수료생들의 건승과 정진을 당부하였다. ▣수료생 명단(12명) 강기열(통신35기), 강인숙(통신36기) 김채옥(정규41기) 배영선(정규37기) 선영숙(정규29기) 성충모(정규39기) 원정애(정규38기) 이승호(통신34기) 정현태(통신36기) 조남혜(정규40기) 최성만(정규39기) 최용범(정규41기) ▣최우수상: 조남혜 ▣우수상: 최성만 ▣공로상: 성충모(개인), 대동교구(단체), 동두천교구(단체) 한편, 오후 2시부터는 수운회관 807호에서 정규·통신과정 입학식이 진행되었다. 입학식은 서소연 교무차장의 집례로 학사일정 소개, 신입생소개 그리고 참석한 재학생소개에 이어 이상면원장의 특강이 진행되었다. 이번 학기의 경우 모두 28명이 등록한 상태이다. 3월 말까지 추가 등록이 가능하므로 종학대학원 교무처 (02.720.3020) 문의 후 추가 등록을 하면 된다. 포덕166년(2025) 천도교종학대학원 정규·통신 과정 교육과정은 토요일은 현장출석 또는 통신과정(줌)으로, 수요일은 통신과정(줌)으로 진행되며 재원생들은 매주 카톡이나 블로그를 통해 공지되는 강의 일정 및 강재를 강의 전에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재원생은 매년 동계 하계 일주일의 수도원 수련과정은 필수적으로 이수하여야 한다. 학기 중 과목별 전체 80% 이상 출석(줌 포함)해야 하고, 정규과정생은 50% 이상 현장출석을 하여야 한다. 천도교종학대학원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육과정 개선과 학습 환경 향상을 통해 더욱 발전된 교육기관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했다. 이번 수료식과 입학식을 통해 천도교의 교육 전통이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며,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기사 및 사진 제공 : 천도교종학대학원 -
경주교구, 경주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3·1절 행사 봉행천도교 경주교구에서 만세삼창 및 참례의식을 갖고 태극기와 궁을기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였다. 만세 소리와 하얀 두루마기들이 입은 참가자들은 만세삼창과 함께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였다. 3·1독립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에 이르자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날 행사엔 천도교 경주교구와 용담교구 교인, 경주겨레하나 회원,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회원, 포항 동대해문화연구소 회원, 포항 일월문화원 회원 등이 참여했다. 이날 김성대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상임이사는 의암 손병희 성사의 지시로 영남지역 천도교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 경주지역에서의 기도봉행 및 종교인대표 33인, 종교인들에 대한 일제의 삼엄한 감시, 그리고 당시 대구경북 독립운동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1919년 3월 여러 차례 만세운동을 위한 시도와 실패가 있었지만 4월까지 경북을 비롯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이어져나갔다. 경주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현장인 장터가 위치했던 이곳엔 현재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표지석이 전부다.
